[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칠레 우승 분석 '더 섬세하게, 더 투쟁적으로'
입력 : 2015.07.0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이과인의 킥이 솟구친 가운데, 칠레 골키퍼 브라보가 바네가의 킥을 막아 세우며 코파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5일(한국시각) 칠레 산티아고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에서 열린 2015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칠레가 0-0 무승부 뒤 승부차기에서 아르헨티나를 4-1로 꺾었다.



:: 30m 안에서 벌어진 전쟁, 물러날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치열했다. 전반전 플레이가 이뤄진 범위는 대부분 중앙선 기준 30m 이내. 잘못된 볼 터치 하나에 양 팀 전형 전체가 내려서고 올라서길 반복했다. 사소한 실수 하나도 죄악시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계속됐다. 쉼 없이 투닥거리면서도 누구 하나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특정 팀이 취하는 경기 운영의 성격을 따질 때, 기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최초 압박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흔히 지도자가 앞쪽으로 팔을 휘저으며 "위에서 해!"라며 독려하는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다. 가령 후방에서 볼을 잡은 상대가 횡패스나 백패스로 압박의 빌미를 흘리거나, 뒤쪽에서 스로인을 맞는다면 어김없이 앞으로 다가가 압박의 그물을 펼친다(하단 캡처① 참고).

산체스-바르가스 조합에 발디비아까지 올라선 칠레는 끊임없이 상대를 쪼았다. 골키퍼 로메로의 짧은 킥을 받으려던 아르헨티나 중앙 수비진 오타멘디-데미첼리스가 페널티박스 모서리 지점으로 펼쳐 서자, 칠레는 더 전진해 숨통을 조인다. 결국 공중으로 처리한 롱킥은 중앙선 지점에서 소유권이 넘어가곤 했다. 이런 식의 경기는 크게 두 가지 상황에서 나온다. 급하거나, 자신이 있거나. 칠레는 후자에 가까웠다.

더불어 '공격 시 측면 수비가 얼마나 전진했느냐'도 따져봐야 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하나만 놓는 팀에서 자주 보이듯, 칠레 역시 디아스가 중앙 수비 메델-실바 라인 사이로 들어가면서 좌우 측면 수비가 전진을 거듭한다. 이들이 볼 점유율에서 앞선 건 오른쪽 측면에서 튀어나와 전환 패스를 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크로스가지 시도한 이슬라의 덕이기도 하다.



:: 디아스vs마스체라노, 후방 컨트롤타워의 싸움

뜨거운 경기에도 0-0 균형이 깨지지 않은 이유는 수비 진영에서의 훌륭한 퍼포먼스에서 찾아야 한다. 산체스까지 2선으로 내려와 공격을 풀려 했던 칠레, 메시가 중앙으로 좁혀와 플레이메이킹에 나선 아르헨티나. 이들에 맞선 각 팀엔 디아즈와 마스체라노가 있었다(마스체라노는 연장 들어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파스토레와 빌리아, 비달과 아랑기스 역시 팀 조직을 구축하는 데 헌신적이었으나, 기본적으로 후방을 주무르는 컨트롤타워 역은 이 둘이 맡는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중앙 수비 사이로 들어와 패스 축이 되며 상대 압박을 분산한다. 안전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패스 줄기를 뽑아내며 공격으로 전환하는 시발점이 된다. 수비적으로는 상대 흐름을 집어삼키는 포지션 본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키가 크지 않되 빠르다. 뛰어난 수비 지능으로 상대가 노리는 루트를 미리 간파하고, 이를 저지할 만한 투쟁심도 엿보인다. 여기에 공간으로 흐른 볼까지 완벽히 장악할 만큼 성실함까지 곁들였다.

가로 길이가 105m에 달하는 축구장 규격상, 30m 내 좁은 진영에서 치고받는다는 건 어딘가에 광활한 공간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이는 육중한 몸매에 발이 느린 중앙 수비진 뒤쪽으로 공간이 노출되는 상황으로까지 번진다. 특히 측면 뒤쪽으로 볼을 붙였을 때, 속도가 뛰어난 데다 발재간까지 갖춘 상대 공격수는 늘 부담스럽기 마련. 이들보다 앞장서 볼을 감싸고 수비 영향력을 쥘 수 있어야 비로소 방어가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 마스체라노는 특히 뛰어났다.



:: 산체스vs메시, '메없산왕' 가리지 못한 대결

메시가 없을 때는 산체스가 왕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신이 된 메시, 아스널로 적을 옮겨 그간 쌓인 울분을 토한 산체스가 국가대항전에서 만났다. 그것도 남미 대륙의 최강자를 가리는 자리. 메시와 함께 경기를 뛸 때, 산체스가 어느 정도의 경기력으로 응수하느냐에 두 팀의 운명이 갈릴 수 있었다.

전반전만 해도 산체스는 발에 볼이 잘 안 붙는 모습이었다. 터치에 섬세함이 떨어진 탓에 볼이 자꾸 튀면서 다음 동작도 삐걱댔다. 그럼에도 번뜩이는 장면을 만들어낼 클래스는 살아있었다. 후반 막판 후방에서 넣어준 로빙패스를 특유의 폼으로 돌려 때린 터닝 슈팅은 경기 통틀어 가장 극적이었다. 그 외에도 측면으로 빼주는 패스 등 만들어가는 플레이에도 재능을 보였다. 단, 메시와 아르헨티나를 완벽히 무너뜨릴 한 방까지는 선사하지 못했다.

메시는 오늘도 파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니폼 상의가 늘어났고, 걷어차이면서 상대 수비진에는 경고를 안긴다(하지만 이 지점이 중앙선보다도 위였던 터라 큰 효과는 없었다). 이번 코파만을 두고 봤을 때, 메시를 보는 재미는 골보다는 '도움'이란 스탯에 있었다. 후반 막판 상대 수비를 모조리 끌고 뛰며 라베찌에게 연결했듯, 상대 진영 전체를 뒤흔들 힘이 존재했다. 다만 그간의 경기와 비교해 그 활약도가 절정에 달하진 않았으며, 잘 차려놓은 밥상을 누릴 동료도 없었다.



:: 칠레가 우승 공식 '더 섬세하게, 더 투쟁적으로'

정작 왕좌는 승부차기에서 결정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드러진 칠레의 힘은 인상적이었다. 볼을 돌리거나, 직접 치고 나가는 작업은 아르헨티나의 반응 속도를 앞질렀다. 누군가 쓰러져야만 하는 녹다운(Knock-down) 매치를 했다면 연장전에서까지 팔팔한 모습을 보인 칠레가 유리했을 터다. 1994 미국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경기 막판까지 독일을 물고 늘어진 한국 대표팀처럼 말이다.

팽팽했던 흐름이 칠레 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건 60분대 내외. 즉, 체력적 요소가 경기를 크게 좌우할 시점부터였다. 보통 많이 뛰는 것을 무기로 하는 팀은 부족한 기술력을 상쇄해 가려는 경우가 많다. 볼을 다루는 개개인의 능력이 상대보다 부족한 바에야, 차라리 더 뛰고 압박하며 숫자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자는 심산이다.

하지만 칠레는 다른 매력을 풍긴다. 적극성과 투쟁심을 기민하게 선보임과 동시에, 이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이어나갈 기술과 지능이 있다. 필드 플레이어 대부분이 경기당 12~13km를 족히 뛰는 활동량으로 피치 곳곳에서 역동적인 모습을 끌어내면서도, 이를 승리로 완성할 만한 섬세함까지 갖췄다. 힘과 기술의 조화가 결국엔 메시의 성인 대표팀 우승 도전을 또 한 번 망쳤다.


사진=2015 코파아메리카 공식 페이스북, SBS Sports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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