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스카우트(9)] 수원 은성수, 틀 깨고 다시 태어나다
입력 : 2016.06.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막 꽃피우려는 친구들 하나둘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연재.

4년 만에 부활한 R리그(2군 리그)를 바지런히 쫓았다. 유스, 우선 지명, O-23(23세 초과 선수) 및 외국인. 다음과 같이 출전 선수를 분류하는 매치업은 1군의 그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훗날 으리으리한 경기장, 열광하는 인파와 하나돼 찬란히 빛나길. 무한한 잠재력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길. 확률적 수치가 높지 않을지라도, '가능성' 하나만으로 아름답다. 어린 선수들이 주연이 돼 자아내는 그 향은 자못 풋풋하다.

은성수(23, 수원 삼성)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 2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조별예선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뒤로는 잠잠했다. 이후 고종수 코치가 지도하는 수원 2군 경기 출전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이 선수를 보고와서는 다들 똑같은 얘기를 늘어놨다. (1) 은성수가 중원에서 게임 주무르던데? (2) 은성수가 이제 태클을 다 하더라?

(1)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하면서 운영 능력은 탑재했었다. (2)는 다소 의외였다. 볼을 예쁘게 차려던 기조가 몸에 뱄던 탓인지. 적극적인 도전 형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박종우를 향해) 나처럼 볼 차면 2군 가는 거냐?'. 한때 논란을 몰고 왔던 기성용의 SNS 내용. (지난 일을 들춰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은성수에 대한 첫인상이 꼭 그랬다. 기성용을 무작정 흉내 낸다기보다는 맡은 역할 등이 깨나 비슷했다. 킥을 비롯한 몇몇 플레이의 모션들이 제법 유사했다.

왼발은 확실히 쓸 만했다. 동년배 문창진(포항 스틸러스)이 갖춘 것처럼 환상적이고도 천재성 넘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기본에 충실했다. 팀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해냈다.

단, 간격을 유지하는 힘은 살짝 떨어졌다. '라인을 당긴다'고 일컫는 과정이 아쉬웠다. 4-1-4-1 중 수비형 미드필더 1 자리는 수비 파트가 굉장히 까다롭다. 횡으로 공격해오는 상대 팀에 맞서 적기에 자리를 잡느냐. 몸 방향을 미리 바꿔 수비할 준비를 해두느냐. 이러한 잣대를 들이댔을 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커버하는 능력은 처질 수 있었다.

수비 시 개인 동작도 그랬다. 숭실대 소속 은성수를 복기해봤을 때, 몸을 부대끼며 경합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들이받고 부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쉽게 말해 비슷한 나잇대 이찬동(광주 FC)의 대척점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개 수원의 U-18 팀 매탄고 소속 아이들이 그랬다. 볼은 잘 차는데, 얼핏 맥없이 비칠 때도 있었다. 상대가 맹렬히 돌진하건만, 죽기 살기로 따라가는 맛이 부족했다. 때로는 애절함 없이 볼 차는 것처럼도 보였으니. 이에 1군 팀에 붙었던 '수원병'이란 별명을 따 '매탄병'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돌았다.

그런 성향의 선수들만 모아놓은 건 아닐 터다. '해당 레벨에서는 그렇게 해도 통했다'는 시각에서 바라볼 일일 듯싶다. 동 연령대 선발된 집단이 한 팀을 이뤘으니 상대를 압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이대로 되지 않았을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 하지만 고수들만 생존한 프로 무대는 절대 아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거나, 혹 인지한 후에도 뜯어고칠 수 없다면 그걸로 끝. 은성수는 조금 다르게 대처했다.

"패스하고 조율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 있었어요. 그런 역할을 계속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수비에 대해서는 지적하시는 부분과 같은 생각이에요. 그런 걸 싫어한다기보다 공을 더 예쁘게 차려 했던 것 같아요. 요새는 코칭 스태프들도 그런 걸 안 원하세요. 수비적인 것도 준비해야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걸 저도 느꼈고요. 더 악착같이 고치려고요."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 수원 2군이 서울 2군과의 원정 경기에 나섰다. 한 골씩 주고받은 양 팀은 'R리그판 슈퍼매치'를 1-1로 마쳤다.

은성수는 4-2-3-1 전형의 2 자리에 들어갔다. 이종성과 짝맞춰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됐다(지금껏 선발은 주로 이런 형태를 이뤘다. 경기 중 고종수 코치의 지시에 따라 한 명의 수비형으로 놓이기도 했다). 이종성이 동일 선상에서 살짝 위로 올라섰다면, 은성수는 그 아래를 담당했다.

중앙 수비가 넘긴 볼을 각지로 배송하는 게 주요 임무였다. 이 자리에 누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경기 퀄리티는 천지 차다. 볼을 깔아서 줄 것인지, 띄워서 뿌릴 것인지. 짧게 건넬 것인지, 길게 때릴 것인지.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꺾을지, 그 다음에는 또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동료 발밑을 겨냥할지, 공간을 조준할지. 상황에 맞게 선택하고 조율하는 것이 곧 운영 능력.

은성수는 경기를 읽고 풀어내는 일을 준수하게 수행했다. 풋내기들이 주축이 되는 R리그는 이런 범주에서의 세련미가 떨어지기 십상. 어느 타이밍에, 어느 위치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가 상당히 중요한데, 수원은 은성수를 세우면서 큰 걱정거리를 면했다. 조금 더 공격적으로 빠르게 나아갔으면 하는 장면에서 한 템포 꺾은 느낌이 없지 않았어도, 안정감을 가미했다.

말로만 들었던 '은성수의 태클' 역시 목격했다. 몸에 익지 않은 듯했어도, 또 그 빈도나 성공률이 높다고는 말 못 해도 상대 공격을 지연하는 성과를 냈다. 전진 패스 대신 횡, 백패스를 유발한 것도 이 덕분. 변해가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물론 한 단계 높은 레벨은 또 다른 얘기다. 격렬한 템포에 맞서 순간적으로 얼마나 세밀할 수 있느냐는 더 지켜볼 일. 다만 이를 감당하고자 지도자의 충고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만큼은 눈에 띄었다.

"R리그를 만만히 볼 수 없는 게 1군에서 못 뛰는 선수들이 나서다 보니 되게 절박하다는 점이에요. 저 개인적으로는 1군과 경기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하고 있습니다. 개인 기량은 물론이고, 공수 전환 속도 같은 부분에서 1군과 2군은 차이가 커요. 볼 빼앗긴 뒤에는 바로 수비해야 하고요. 볼 받을 때는 순식간에 상대한테 둘러싸이니 더 신경 써야 해요. 앞으로 더 적응해야죠."





권창훈, 백지훈, 이용래, 박현범, 조원희, 오장은 등. 은성수의 자리에서 뛰었거나, 뛸 수 있는 자원들이다. 숭실대 재학 시절, 구단 측의 부름을 받아 연습 경기를 소화했을 때 함께 발맞췄던 형들이 이젠 경쟁자로 변모했다. 타 포지션에 비해 그 층이 유독 두껍고, 면면 역시 쟁쟁하다. 위 사진처럼 포커스를 정면으로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수원은 다소 급해졌다. ACL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했고, 리그에서는 무승 고리를 쉬이 끊어내지 못했다. 이에 서정원 감독 역시 팀 척추에 신인을 투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김건희, 문준호, 고승범 등 입단 동기들이 기회를 받았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중심을 잡았다. 조급함에 투정부리고 한숨 내쉬는 대신, 본인 것을 하려 했다. 기존 틀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녹록지는 않아도,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했다. 멘탈도 실력. 단순 기술보다 상위 영역에 놓일 수 있는 이 부문에서 은성수는 확실히 단단했다.

"제 자리에 좋은 형들이 많기는 해요. 또, 시즌 초반에 1군 경기에 나가긴 했어도, 수비 면에서 부족한 것을 많이 느꼈거든요. 지금 누가 뛰고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준비돼 있느지가 관건이죠. 그래도 빨리 개선해 나간다면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형들과 함께 훈련도 하고 경기도 나서봤으니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갖고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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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포탈코리아, 한국프로축구연맹, 수원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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