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스카우트(13)] 상파울리 박이영, '철학'이 밴 축구는 특별하다
입력 : 2016.08.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함부르크(독일)] 홍의택 기자= 막 꽃피우려는 친구들 하나둘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연재.

박이영(22, 상파울리 U-23)이란 석 자가 튀어나온 건 비교적 최근이다. 1994년생. 성인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에서 존재를 각인한 권창훈과 동년배다. 사실 프로 팀에서 어느 정도 두각을 드러내는 동갑내기도 몇몇 된다.

연령별 대표 경력이 전무했기에 이름 들어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서울체고 축구부가 해체된 시절, 그 마지막 세대였다는 이력이 독특했던 정도. 박이영이 떠오른 건 고교 졸업 이후부터다. 필리핀,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등지에 노크하더니 독일 함부르크 지역의 상파울리에 정착했다.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대목은 '과정'이다. 현 소속 팀 상파울리 U-23에 다다르기까지의 스토리 그 자체보다는 그간의 여정이 자아낸 '자기 철학'이다. 에이전트 없이 수백 통의 메일을 쏴 직접 테스트까지 추진한 집요함. 이런 이들은 대개 남들이 지니지 않은 특별함을 갖춘 법이다.




■ 대학 진학에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던 이 청년. 만 3년 만에 독일 모 팀에 거처를 마련했다. 지난달에는 현 소속 팀과의 재계약을 끌어내기도 했다. 문득 들었던 생각, 단 하루도 안정적이었던 적이 없었겠다 싶었다.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뼈를 갈았겠다 싶었다. 박이영은 그 과정에서 오히려 목표를 지웠다고 말한다.

"어차피 과거도, 현재도 미래를 향한 하나의 과정이잖아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최종 목표를 정했어요. 남들 다 하는 생각이죠, 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등 높은 레벨에서 뛰는 거요. 그런데 갑자기 든 느낀 점이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 여기(상파울리 U-23)에 속해있는 것도, 최근 어깨 부상을 당해 쉬고 있는 것도 예측이 안 됐던 일이잖아요. 한 시간 앞도 모르는데, 너무 멀리 보니 더 어렵더라고요. 계획 세우고 최선은 다하되, 물 흐르듯이 가는 것. 즉, 결과는 하늘에 맡기려고요."


■ '목적지를 명확히 정하라!'. '생각에 그치지 말고, 종이에 적어라!', '반복해 읽으며 끊임없이 상기하라!'. 자기계발 서적 속 소제목으로나 등장할 법한, 어쩌면 모든 이들이 통념처럼 받아들인 부분을 박이영은 부정했다. 목표가 없는 축구 선수. 그렇다고 자기 합리화에 찌들어 있는 건 아니었다. 나아갈 동력을 뽑아내고자 스스로 옥죄었다. 제3자로서 '참 피곤하게 산다' 느꼈을 정도로.

"목표가 없다고 해서 저 자신을 풀고 있지는 않거든요. 평소 몸 관리 같은 건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자부해요. 저처럼 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 싶을 만큼요. 그냥 핑곗거리를 만들기가 싫어요. 경기력이 안 좋았다? 그 이유를 꼬치꼬치 찾다 보면 답이 나와요. 가령 경기 날 콜라 한 잔을 마셔서 배가 아팠다면 그 이후로는 콜라를 아예 안 먹어요. 운동 선수로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제가 경기를 망친 원인 자체를 없애고 싶어요. 그래야 후회가 없는 거잖아요. 결국 라면도, 패스트푸드도 끊었어요. 억지로 하는 건 아니에요. 축구를 사랑하고, 오래 하고 싶고, 또 모든 걸 쏟고 싶으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거 같아요."




■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때로는 타인과의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좋은 게 좋은 거잖아'란 사고가 만연한데, 그에 반기라도 들면 서로 참 불편해지지 않나. 결국 뭐든 혼자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마음이 편한 대신 따라붙는 불청객도 있다. 외로움.

"그동안 늘 혼자 자신을 다스려야 했어요. 함께 생활했던 한국인 선수들도 모두 다른 방식을 갖고 있었거든요. 누가 옳다, 그르다는 개념이 아니라 다른 거예요. '쟤 되게 오버한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얘기하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제가 남의 말에 잘 흔들리지 않거든요. 지금 여기까지 온 것도 제 방식 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가끔은 외롭죠. 저와 비슷한 성향의 동료가 옆에 있다면 한결 나을 거란 상상도 해요. 그러면 시너지 효과도 날 것 같은데 말이죠."


■ 가만히 듣다 보니 '목표'란 표현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가시적인 지향점, 즉 '○ 리그에서 뛰고 싶어요', '○골 정도 넣고 싶어요. 공격 포인트는 ○개요"는 없다. 대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축구'를 목표로 삼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에 본인을 묶어두지 않고, 그 내면의 행복에 귀 기울였다.

"독일에 와서 그런 걸 더 느껴요. 축구가 너무 빠르다는 걸요. 한 경기 만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다른 팀에 입단하는 등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요. 저보다 열심히 안 해도 좋은 팀에 가는 선수를 보면요? 예전에는 억울했죠. 제가 대표 경력 하나 있으면 몸값이 달라졌을 텐데, 테스트 볼 수 있는 선택지도 더 많았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버렸어요. 보인중 3학년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컵' 한국 대표로 영국에 가서 유럽 진출 꿈도 품어봤고, 서울체고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신입생 없이 고생도 해봤고, 필리핀에서 배운 영어가 유럽 도전에 결정적 키가 됐고. 그렇게 흩어진 점 하나하나가 언젠가 연결돼 미래의 저를 만들 거로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남의 행보에 신경 쓰지 않아요. 그보다는 스스로 즐기는 축구를 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 범인이 들이대는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봤을 때, 박이영이 어느 정도 만개하리라 점치기란 쉽지 않다. 꽃길은커녕, 가시밭길만 걸을 공산도 농후하다. 단, 박이영에게는 세간의 목소리에 꿈쩍 안 할 힘이 있었다. 억척스럽게 본인의 길을 걸어갈 내공이 있었다. 웬만한 외부 충격에는 으스러지지 않을 '자기 철학'. 무엇을 위해 축구를 하는지, 어떻게 축구를 해나갈지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은 단순 축구 기술을 하나 더 익히는 것보다 훨씬 값지다.

"만약 제가 잘 안 풀리면요? 그것도 받아들여야죠. 후회 안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은, 음. 항상 축구를 하면서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액수 같은 것에 얽매기보다 제가 어떤 팀에서든 경기에 나서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일단은 축구를 더 잘하고 싶고, 계속 배워나가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독일까지 왔고, 그러면서 돈도 벌고 있으니 감사하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모토는 '즐기자'예요. 축구를 잘하고 싶은 것도 결국 즐기기 위해서예요. 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을 못 돌아봤거든요. 시야가 좁아서요. 포르투갈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을 때도 왜 시내 한 번 못 돌아봤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축구 선수뿐 아니라 모든 청년이 다 바쁘게 치여 살잖아요. 안 힘든 사람이 없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 안에서도 최대한 즐기며 삶의 질을 높여보고 싶어요. 연극이나 영화도 한 편씩 보고, 레고 전시회도 한 번 가보고. 그러기 위해서 축구 외 인생에 대해 저 자신을 조금 더 풀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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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포탈코리아, 상파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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