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현장에서 본 우라와전 충돌, 사건의 재구성
입력 : 2017.06.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사이타마(일본)] 이경헌 기자= 시간은 흘렀지만 제주유나이티드-우라와 레즈전 충돌 사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일단 백동규(26)의 가격으로 더 큰 화를 막지 못한 제주의 책임은 크다. 상대방을 해하는 폭력 행위는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정당화될 수 없으며 경기장에서 우리가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금기다. 하지만 이날 경기장에서 지켜본 그 불씨는 홀로 피어오르지 않았다. 중계화면에 비춰진 한정적 시야와 게이트키핑 과정이 부실했던 일부의 일본 언론은 제주를 일방적인 피의자로 몰아세웠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문제의 원인을 모른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왜 제주는 그토록 흥분했을까.



:: 점점 과열됐던 경기 그리고 첫 충돌

이날 경기서 제주는 전반전에만 고로키 신조와 이충성(일본명 리 타다나리)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0-2로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1,2차전 종합스코어는 2-2 무승부였고, 후반전을 기점으로 우라와의 공세가 한풀 꺾이는 모습이었다. 원정다득점의 유리함을 갖고 있는 제주의 입장에선 결정적 한방이면 언제든 승부의 향방을 뒤흔들 수 있었다. 팽팽한 균형 속에 경기의 양상은 더욱 치열해졌다. 여기에 리궉만(홍콩) 주심의 애매한 판정으로 그라운드의 분위기는 점점 과열되기 시작했다.

후반 34분 안현범이 오른쪽 페널티박스를 돌파하면서 다카키 도시유키와 충돌해 넘어졌지만 주심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반면 곧바로 우라와의 공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조용형이 고로키 신조를 향해 정확한 태클이 들어갔지만 파울과 함께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제주 선수들은 공만 건들었다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리플레이 장면만 봐도 쉽사리 수긍하기 힘든 판정이었다. 후반 39분에는 진성욱이 마키노 도모야키의 팔꿈치에 얼굴을 가격당했지만 별다른 경고 없이 그대로 넘어갔다.

후반 9분 승부의 향방을 가른 료타 모리와키의 득점이 터지자 양팀의 희비는 극명히 엇갈렸다. 그리고 승기에 취한 일부 우라와 선수들이 자극적인 행동이 시작했다. 첫 충돌은 경기 종료 직전 우라와의 코너킥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운이 고로키 신조에게 파울을 당했고 제주가 프리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권순형과 즐라탄 류비안키치가 다툼을 벌였다. 즐라탄은 권순형에게 '너넨 끝났다'라는 도발과 함께 손가락으로 3-0 스코어를 만들면서 (F가 들어가는) 욕설도 내뱉었다. 이후 격렬한 언쟁과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백동규의 가격은 분명한 잘못 그러나...

어쩌면 단순한 다툼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장면은 교체 명단에 있던 백동규의 난입에 이은 가격으로 더욱 과열됐다. 당시 백동규는 권순형이 상대 선수들에게 가격을 당하는 것으로 착각해 그라운드로 달려갔고 싸움을 말리던 아베 유키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백동규는 곧바로 퇴장을 당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라운드 안에서 폭력을 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백동규 역시 자신의 행동에 깊은 반성을 하고 있으며 아베 유키에게 기회가 된다면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우라와의 계속되는 도발은 화를 더욱 키웠다. 중계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무토 유키가 제주 벤치를 향해 손가락 욕설을 날렸다. 이를 지켜보던 우라와 직원이 경기장에 들아와 무토를 말렸다. 주심은 권순형과 즐라탄에게 엘로우카드를 준 것에 이어 부심의 권고에 따라 무토에게 경고를 줬다. 직원은 그라운드에 들어올 수 없지만 어수선한 정황에 그대로 넘어갔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는 우라와 스태프까지 도발에 가세했다. 제주 벤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물을 뿌리고 물병까지 바닥에 내던졌다.



:: 공포의 술래잡기? 권한진이 말하는 진실은

우라와의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특히 마키노 도모아키는 3-0을 가리키는 손가락 3개를 펼치며 제주를 계속 자극했다. 일본 J리그 무대에서 활약했던 권한진이 이를 알아듣고 마키노에게 항의하기 위해 쫓아갔지만 마키노는 라커룸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 과정에서 권한진은 퇴장을 당했다. 당시 중계화면에는 마키노가 쫓기는 모습만 강조됐고,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은 '공포의 술래잡기'란 표현을 썼다. 경기 후 마키노는 "제주는 축구가 아닌 프로레슬링을 했다"고 자신의 행동을 두둔하며 제주를 비난했다.

권한진은 마키노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심지어 일본 선수들이 찾아와 말리면서 '마키노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이해해달라'고 하더라. 그러는 와중에도 마키노가 계속해서 손가락 세개를 펴는 등 세리머니를 했다. 그래서 쫓아가게 됐다. 자기가 잘못이 없으면 왜 도망갔겠나. 마키노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트러블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경기 후 가시와기 요스케 등 몇몇 우라와 선수들은 실의에 빠진 제주 선수들을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 우라와의 의견서 제출과 제주의 입장

우라와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경기장에서 흥분했던 제주는 다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제주는 복귀 후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 파악을 위해 조사에 나섰다. 선수들에게 정확한 자필 진술을 받았고, 영상 분석을 통해 우라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증거도 확보했다. 제주는 우라와가 의견서를 제출한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자료를 다시 면밀하게 검토하고 준비해 경기감독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아울러 제주는 구단 홈페이지에 사과문도 올렸다.



제주 관계자는 "일단 페어플레이를 끝까지 보여주지 못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특히 백동규는 팀과 우라와 측에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베 선수에게는 기회가 된다면 직접 사과하고 싶어한다. 우라와의 8강 진출을 축하한다. 하지만 우라와 구단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전수조사를 했다. 당시 영상과 사진, 진술 등 충분한 자료를 다 확보했다"라고 말했다.

:: 선수와 팬, 프레스까지 페어플레이 실종, 우라와의 대답은?

이번 사건을 두고 일본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재일교포 출신이자 일본야구의 전설인 장훈은 4일 일본 TBS ‘선데이 모닝’에 출연해 우라와 선수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우라와 선수들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 제주 선수들이 보면 무슨 행동이냐고 했을 것이다. 선동하는 행위나 이겼다는 태도 같은 것은 안 된다. 과거에 일본은 세계 어디를 가도 예의 바른 민족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젊은 층에 에티켓, 매너를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우라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도발적인 측면은 개인적인 잘잘못이라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느낀 점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는 범주를 넘어섰다. 극우팬들로 유명한 우라와 서포터스석에서는 또 다시 전범기가 등장했다. 한 관중은 자신의 SNS에 전범기 속에 우라와 앰블럼이 있는 종이를 사진으로 찍고 "We hate F Korea"라는 욕과 함께 게재했다. 사진이 찍힌 곳은 바로 우라와의 서포터스인 우라와 보이즈 좌석이다. 우라와 팬들은 지난 2013년 전북과 경기에서도 전범기를 들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일부이지만 일본 프레스의 매너도 아쉬웠다. 경기 후 한 일본 언론은 조성환 감독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계속 사진 촬영했다. 경기 분위기 과열로 주변에서 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주 관계자는 경기 후 그 언론인을 향해 사진 촬영에 대한 이유를 물었지만 모습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제주의 잘못과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 후 조성환 감독의 말처럼 패자의 매너도 필요하지만 승자의 매너도 필요하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판은 또 다시 깨지고 말 것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주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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