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커스] 짧게 타오른 조진호, 그래서 아쉽고 그립다
입력 : 2017.10.1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부산] 박대성 기자= 한국 축구에 비보가 터졌다. 조제 모리뉴를 동경했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4세. 부산 아이파크 조진호 감독이다.

10일 오전 11시 30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젊고 촉망받던 조진호 감독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보도에 따르면 출근길에 지인과 통화하던 도중 쓰러졌다. 원인은 급성 심장 마비였다.

속보가 아니길 바랐다. 황급히 부산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대답은 “저희도 충격적입니다. 산책 중에 심정지가 왔고 심폐 소생술을 했지만...”였다.

조진호 감독은 항상 산책과 등산으로 몸과 마음을 재정비했다. 2008년 심혈관 확장 수술을 했기에 더욱 몸 관리에 신경을 썼다. 평소에 술과 담배를 즐기지도 않는다. 심리적으로 힘들 때면 통도사에서 안정을 찾았다.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지난 8월, 부산은 리그 선두와 승점 13점 차로 벌어졌다. 클래식 직행을 꿈꿨던 조진호 감독에겐 부담으로 왔을 것이다. 부산 클럽 하우스에서 만난 자리에서 “하 경남 잘하네. 예전에 대전 승격할 때랑 똑같다. 신경은 안 쓰는데 참...”이라고 말했다.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속엔 많은 부담이 있었다. 조 감독은 “박 기자, 근처에 통도사 있는데 안 갈래? 절에 가서 기도라도 해야겠다. 한 번씩 이렇게 마음을 잡거든”이라며 동행을 요청했다. 절에 도착한 그는 한동안 묵묵히 기도했다.

심기일전한 조진호 감독은 경남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러나 성남FC와의 홈경기 무승부, 경남 원정 0-2 패배로 클래식 직행 기회가 하늘로 흩어졌다. “경남이 잘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경남전 이후 조진호 감독과 만났다. 조 감독은 “어쩔 수 없다. 플레이오프에서 한 번 잘해보려고. 잘 추슬러서 승격해야지. FA컵 우승해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라면서 “선수들이 기 안 죽어야 하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다”라며 성적보다 동기부여를 챙겼다.

이어 “남은 3경기에서 10점씩 넣으면 되지 않겠나. 아 이거 누구한테 말해서 2팀이 승격하게 해달라고 하면 안 되나. 그러면 우리도 좋고 경남도 좋은데. 어렵지만 다시 잘해보자”라며 도리어 축 처진 코치진을 독려했다.



조진호 감독은 코치진과 막판 스퍼트 논의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오늘 경기는 오늘 경기고, 다음에 또 만납시다.” 환한 미소와 함께 전한 짧은 인사가 그렇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

조진호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모리뉴 감독을 동경했다. 전술적인 부분보다 라커룸 대화와 동기 부여 방법을 알고 싶어 했다. 유럽 최고 수준 감독이 어떻게 최고 선수들을 움직이는지 항상 궁금해했다.

끊임없는 노력 끝에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미팅 시간을 줄이고 카카오톡으로 소통했다. 스포츠 스타들의 동기 부여 영상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세세한 전술적인 부분도 카카오톡으로 전달했다. 짧고 굵은 훈련 과정을 위해서였다.

언제나 자신보다 선수들이 먼저였다. 조진호 감독에게 많은 질문을 할 때면 “내가 아니라 선수들이 주목받아야 한다. 나는 조금만 주목받아도 된다. 그라운드에서 골 넣고 뛰는 건 선수들이다”라고 말했다.

조진호 감독의 열정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조진호 감독 아래 공격적인 팀으로 탈바꿈했다. 압도적인 경남을 넘진 못했지만, 리그 33경기 17승 10무 6패를 기록했다. 리그 3위 아산 무궁화 프로축구단과 무려 11점 차다.

그러나 너무도 짧고 강하게 타오른 열정이었다. “FA컵에서 클래식 팀도 다 이겼는데, 못 할 거 없다”라던 긍정 에너지가 밤하늘의 별이 됐다. 클래식과 챌린지 팀, 축구계 인사들도 비통함에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언젠가 조진호 감독에게 부산 지휘봉을 잡은 이유를 물었다. 조 감독은 “이런 팀을 승격시켜야 보람 있다. 명성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부산은 좋은 팀이다”라고 답했다. 반짝이던 눈과 환한 미소, 그리고 열정. 조진호 감독과의 작별은 그래서 너무 아쉽다.

■ 조진호 감독 (1973. 8. 2. ~ 2017. 10. 10)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가대표
1994년 제15회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
1994년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
2000년 부천SK
2011년 성남 일화 천마
2003년 부천SK코치
2006년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
2009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대행
2011년 전남 드래곤즈 코치
2012년 대전 시티즌 수석코치
2013년 대전 시티즌 감독대행
2014년 대전시티즌 감독
2016년 상주상무 감독
2016년 11월 부산 아이파크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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