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유재훈, K리그 떠나 '인도네시아' 택한 사연
입력 : 2018.02.1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방콕(태국)] 박대성 기자= 인도네시아 외인 중 가장 많은 트로피 수상. 인도네시아 최고 외인을 넘어 현지 골키퍼의 본보기가 된 한국 선수가 있다. 2010년 대전 시티즌을 마지막으로 K리그를 떠난 유재훈(35)이다.

유재훈은 고향 울산에서 골키퍼 기본을 다졌다. 고등학교 시절 학성고에 우승컵을 안기며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울산대 진학 후에도 기량은 우수했다. 전국체전 우승 주역으로 유망주 반열에 올랐고 2006년 대전에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데뷔 시즌에는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2007년엔 삼성 하우젠 K리그 2경기, 삼성 하우젠컵 1경기 출전에 머물렀다. 당시 대전 최고 골키퍼 최은성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유재훈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우선 지명으로 대전 유니폼을 입었다. 백업 골키퍼였다. (최)은성이 형이 대전 최고 골키퍼였다. 은성이 형이 다쳤을 때 짧게 주전을 뛰었는데 MVP도 하고 나름 괜찮았다. 내게 남은 기억은 1달이 전부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짧지만 진한 추억이었다.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순간은 2007년 6월 FC서울전이다. 최은성 부상으로 2년 만에 K리그 데뷔전을 치렀지만 결과는 0-1 패배였다. 준수한 선방을 보였지만 패배를 막지 못한 골키퍼의 숙명이었다.

경기 후 김병지의 한 마디가 화제를 모았다. 김병지는 축 처진 유재훈에게 “야 너 잘하더라”며 툭 던졌다. 김병지의 격려는 유재훈을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유재훈에게 당시를 묻자 “수중전으로 기억한다. 기자분들이 있는 데서 (김)병지형이 잘했다고 하더라. 초등학교 때 울산 공설 운동장에서 보던 스타였다. 병지형을 보며 자란 세대다”라고 회상했다.

대전은 유재훈에게 추억의 도시다. 2007년 9월 팬들 앞에서 프로포즈를 한 장소다. 2007년 9월, 유재훈은 대전 프런트의 배려로 성남전 전반 후 프로포즈를 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벙벙했다”는 후문이다.



강렬한 기억은 오래가지 못했다. 출전 시간 부족 등으로 2009년 12월 31일 대전과 작별했다. 연장 계약 이야기가 나왔지만 임의 허리 수술이 화근이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영입 제안이 왔다.

그러나 K리그 생활은 대전이 마지막이었다. 유재훈은 “대구에서 유니폼 들고 사진까지 찍었다. 에이전트에게 허리 수술을 말했지만 괜찮다고 하더라. 그 말을 믿고 대구로 갔는데 결렬이 됐다. 한순간에 붕 떠버린 셈이다. 2월 28일 등록 마감일까지 기다렸지만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았다. 태국 구단도 알아봤는데 급여가 맞지 않았다. 포기하는 상황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무적(無籍) 신세가 된 유재훈은 고향 울산으로 돌아왔다. 회사 축구팀에서 축구 생활을 이어갔다. 축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 기회가 있었고 마지막 희망을 붙잡았다. 회사에 허락을 받아 어렵게 인도네시아 페르시루라 자야푸라에 입단했다. 인도네시아 도전의 시작이었다.

벼랑 끝 심정으로 훈련했고, 이제 8년 차에 접어들었다. 물론 과거에 K리그 복귀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유재훈은 “27살까지는 K리그에서 영입 제안이 오기를 바랐고 기다렸다.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다.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욕심은 없다. 여기서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라며 넌지시 미소 지었다.

그래도 마음엔 항상 대전을 품었다. 그는 “대전은 프로 무대를 경험하게 해준 구단이다. 김호 감독님과 고종수 형이 대전에 합류했단 소식을 들었다. 사실 난 잘 때도 대전 유니폼을 입고 잔다. 최근 2부 리그에서 성적이 좋지 않더라.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게시판에 응원의 글을 올릴까도 생각했지만 주제 넘은 것 같아 안 했다. 2018년에 꼭 K리그1에 복귀하길 바란다. 항상 응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편에서 계속

사진=유재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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