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토크] <45> 석현준, “조광래호 발탁 당시, 나는 '고등학생'''
입력 : 2012.06.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신념 하나쯤은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더 높은 곳을 바라볼 때 끊임없이 마음 속으로 외치는 신념 말이다. 한국의 차세대 공격수 석현준(21, 흐로닝언)에겐 살벌한 ‘죽기 살기’가 축구 인생 모토다. 청소년 시절 또래들이 갖지 못한 신체 조건과 월등한 개인 기술로 일찍이 유명세를 탔지만, 지금의 석현준을 만든 건 불굴의 정신이다.

그런 석현준이 죽기 살기 ‘시즌 2’ 개봉을 알렸다. 2010년 1월 동양인 최초로 네덜란드 에레데비지에 아약스에 입단하며 화려한 축구 인생의 서막을 알린 그는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잠시 주춤한 상태로 마음을 가다듬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아약스, 흐로닝언에서 배운 게 많다. 시야도 넓어지고 여유도 생겼다. 이제는 자신 있다“며 독기를 품었다.

시즌 1에 해당하는 2년 6개월의 ‘우여곡절’ 유럽 생활을 마치고 6월 말 출국한 석현준은 시즌 2에서 이루고 싶은 게 많다. 영입 제의가 많아 스승 피터 후이스트라 감독이 떠난 흐로닝언에 남을 지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지만, 남든 옮기든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싶을 뿐이다. 라이벌 지동원(21, 선덜랜드)이 그랬듯이 ‘만년 유망주’에서 탈피해 그의 우상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0, AC밀란)처럼 유럽 무대의 당당한 공격수가 되고 싶다고 강조한다.

2012년에는 2010~2011년 A대표팀부터 U-20월드컵까지 3개 대표팀에서 모두 시련을 맛본 것도 만회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첫 발탁 당시 나는 고등학생 석현준이었다. 아약스에서 배운 게 없는 상태로 대표팀에 와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 2009년 말, 아약스 입단 전 기자와 마주하고 근 2년 8개월 만에 잠실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석현준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성공을 얘기했다. 몸집이 불고, 얼굴은 고생의 흔적을 보이듯 검게 그을었지만 마음만은 신인 때와 다르지 않다. 지금부터 3년 차 유럽파 석현준의 얘기를 공개한다.

"이적하면 두리형의 뒤셀도르프"

- 오랜만이다. 외모가 조금 바뀐 것 같다.
바뀐 건 없다.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다. 이 옷도 어제 입은 옷 그대로다(웃음). 귀국해서 푹 쉬고 있다. 한국에 오면 놀이공원 가고 싶었는데 주위에 온통 남자들뿐이라 갈 수가 없었다. 요새는 먹고 자고 놀면서 운동도 했다. 친구들하고 마루공원에서 풋살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선 내가 완전 메시다. 친구들이 플레이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Q. 사람들이 알아보지는 않나?) 처음에는 못 알아보다가 공 차는 거 보고 관심을 갖더니 나중에는 ‘석현준, 석현준’ 하면서 알아봐주시더라.

- 네덜란드는 새 시즌 준비를 일찍 시작한다. 6월 말에 팀 복귀하는 걸로 안다.
잉글랜드처럼 더 쉬고 싶은데 너무 일찍 복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새 시즌 팀에 적응하려면 일찍 가는 게 맞다. 기존 피터 후이스트라 감독이 2부리그 팀으로 옮기고 새 감독님이 오셨다. 2011/2012 시즌을 마치고 감독이 교체되면서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다시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뀌어도 나만 잘하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 차두리가 속한 독일 분데스리가 뒤셀도르프 이적설이 나왔다. 잔류와 이적의 기로에 놓였다.
분데스리가 두 세 팀, 네덜란드 두 팀 정도가 관심을 보이는 걸로 안다. 만약 독일로 가면 (차)두리 형이 있는 쪽으로 가고 싶다. 두리 형은 예전부터 유럽 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주위에서도 내 스타일이 파워풀한 분데스리가와 잘 맞는다고 한다. 하지만 구단과는 피스컵(7월 19~23일)을 치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일단 피스컵을 통해 한국팬에게 좋은 모습 보이고 그 다음 이적을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흐로닝언도 등 번호 11번을 준다고 약속을 하면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 구자철은 출전 기회를 우선시하며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다. 이적 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 있다면?
유럽에서 2년 넘게 있으면 느낀 건 단 하나. 무조건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자철이 형
결정 충분히 이해가 된다. (Q. 지금 가고 싶은 팀은?) 아약스다. 아약스에서 사실상 실패한 뒤라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시설, 규모, 시스템 등 아약스 만한 구단이 없다. 흐로닝언에서 아약스 원정을 갔을 때 느꼈다. 그때 비가 많이 내려 다른 구장들이 모두 경기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약스 경기장만큼은 멀쩡했다. 꾸준히 관리를 했다는 증거다. 내가 속했을 때 몰랐는데 원정팀 입장에서 보니까 정말 이기기 힘든 팀이고 경기장 분위기도 그렇고 다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오면 조건이 안 좋아도 뛰고 싶다.

- 청소년 시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를 꿈꿨다. ‘드림팀’도 바뀌었나?
네덜란드에서 유럽 축구를 많이 접하다 보니 유럽에는 EPL만 있는 게 아니더라. 지금은 AC밀란(이탈리아)을 꿈꾼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밀란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뛴다. 즐라탄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한 선수다. 내 포지션에서 공을 키핑하고, 포스트플레이를 하는 등 최고의 모습을 보인다. 욕심이 많다는 평도 있지만, 유럽에선 그런 성향의 선수가 통한다. 그런 걸 수긍하는 분위기다. 만에 하나 내가 밀란에 가더라도 그때쯤이면 즐라탄이 은퇴할 것이다(웃음). 나중에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Q. 즐라탄 영상을 챙겨보나?) 물론이다.
요새는 올랭피크 리옹 고미스와 바이에른 뮌헨 고메스 경기도 챙긴다. 두 선수는 화려하지 않아도 최전방 공격수가 해야 할 플레이를 한다.

"팀 동료들이 무섭다며 슬슬 피해"

지난 시즌 얘기를 해보자. 아약스를 떠나 흐로닝언에 입단했다.
아약스에서는 마틴 욜 감독이 떠나고부터 나는 눈에 가시였다. 그런 눈빛들을 보고서 팀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이라도 팀을 떠나고 싶었는데 흐로닝언으로 완전 이적하게 됐다. 입단 후 처음에는 힘들었다. 아약스 동료 둘 하고 같이 이적했는데 처음에는 주위에서 수근거렸다. 그리고 아약스 2군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를 향한 파울로 징계를 받고 7주를 쉬었다. 쉬면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그때 쉬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많은 걸 깨우친 것 같다. 복귀해서 처음에는 후반 조커로 뛰다가 막바지에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더 많이 뛰었으면 더 많은 골을 넣었을 수 있었지만 시즌 도중 부상(무릎)도 있었고 이만하면 만족할 만한 시즌이었던 것 같다. (편집자 주: 석현준은 20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었다.)

- 팀 적응에는 문제가 없었나?
내가 특이한 건가, 큰 문제는 없었다. 주로 네덜란드 선수들하고 어울리는데 같이 나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신다. 훈련장에선 농담도 하고, 독설도 날리는 사이다. 너무 재미있게 보냈다. 아약스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다. 나가지 않고 ‘방콕’했다. 말도 안 통하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흐로닝언에 와서 선수들이 밥 먹자고 하면 말이 잘 안 들려도 무작정 따라 나섰다. 내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면 몸을 써서 표현하면 됐다. 이렇게 절대 다수인 네덜란드 선수들과 친한 것은 훈련과 경기에서 효과가 나타나곤 했다. 예를 들어 훈련 때 감독에게 내 얘기를 한 번 더 해준다. 실전에서도 그런 친구들하고는 호흡이 잘 맞는다. 반면 남미에서 온 친구들은 그들끼리만 뭉쳐 다닌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흐로닝언에서 사실상 1부 리그 첫 시즌을 치렀다. 석현준은 어떻게 달라졌나?
침착해지고 거칠어졌다. 지금은 공을 잡고 패스하는 연결 동작이 자연스럽고, 공을 키핑하기 전에 미리 봐둔 쪽으로 논스톱 패스를 주는 데 능숙해졌다. 여유도 많이 생겼고 볼 감각도 좋아졌다. 고등학교 때 하던 게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약스에선 여유가 없다 보니 패스를 받건, 공이 발 앞에 오건 땅을 봤다. 그러니 컨트롤 하고 줄 때를 찾으면 늦었다. 지금 여유가 생긴 건 연습의 결과다. 워밍업 할 때도 고개를 안 숙였다. 러닝 시에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좌우로 돌아보며 뛰었다. 연습경기에선 거침 없이 태클하고 몸 싸움한다. 일부 선수들이 슬슬 피할 정도다. 이상하게 같이 부딪혀도 나는 괜찮은데 다른 선수들은 아프다고 난리다. 그런 모습 때문에 나보고 미쳤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다.(웃음)

그리고 노력하면 뭐든지 된다는 걸 알았다. 흐로닝언에 경쟁자가 있었는데 그 선수가 네덜란드 올림픽 대표였다. 처음에는 뒤쳐진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결국 내가 그 선수를 벤치로 보냈다. 네덜란드 리그에선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나는 그 시간에도 훈련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따지면 하루지만, 한 달에 네 번, 1년에 마흔 여덟 번 등등 늘어난다. 이제는 누가 와도 이길 자신이 있다.

"조광래호 발탁 당시 나는 고등학생 같았다"

- 2010~2011년 A대표팀부터 올림픽팀, U-20 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못했다. 대표팀 미련은 없나?
아약스 있을 때 솔직히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배우지 못했다. 고등학교때와 달리 프로에 가니 내 위주로 훈련하지 않더라. 나는 수아레스의 백업일 뿐이었다. 유럽 생활, 언어는 많이 배웠지만 움직임, 기술은 많이 배우지 못한 상태로 A대표팀에 발탁됐다. 조광래 감독님께서 불러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열심히 하려고 했다. 팀 자부심은 강했다. 그러나 경기에 안 뛰니까 감각이 떨어져 있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유럽에선 대부분 훈련도 선수 본인이 알아서 하는 시스템이어서 나는 사전 지식 없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면 몸이 좋아지는 줄 알고 근육 훈련만 열심히 했다. 그 결과 파주에서 훈련할 때 나 혼자 힘들고 나 혼자 몸이 뻣뻣하고 둔했다. 이란전에선 고등학생 석현준과 다를 바 없었다.

- 당시 조광래 감독은 활약에 대해 혹평했다.
감독님 말씀이 맞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흐로닝언에서 (후이스트라) 감독님으로부터 크로스를 맞이하는 문전 움직임, 포스트 플레이를 배워 활약할 자신 있다. 다시 들어가서 이번에도 내가 못하면 내가 바보인 거다. (지)동원이가 지금 인지도도 높고 잘하고 있다. 내가 좇는 입장이다. 앞으로 내가 더 열심히 해서 브라질 월드컵에서 결판을 지을 생각이다.

- 인생 모토가 ‘죽기살기’다. 인터뷰 때마다 “죽기살기’를 반복한다. 이제 ‘죽기살기’ 시즌 2가 시작된다.
죽기 살기로 해서 안 되는 건 없다. 호흡 올라왔는데 더 뛰었을 때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후회가 없어야 한다. 고등학교 때 골이 잘 들어가서 자만이란 자만은 다했다. 지금은 골의 소중함을 느낀다. 골 하나에 모든 게 달라진다고 느껴진다. 앞으로 2년 6개월 동안은 말만이 아니라 골을 많이 넣고 싶다. 진정한 한국의 즐라탄이 되어야 한다.

인터뷰=윤진만 기자
사진=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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