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불문율, 선(善)과 필요악(必要惡) 그 사이
입력 : 2019.05.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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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불문율(不文律). 영어로는 ‘unwritten law’라고도 한다. 사전에 등장하는 불문율의 정의는 ‘사회 구성원이 암암리에 지키고 있는 비공식적 약속’이며, 이는 정치, 경제 등 사회 대부분의 분야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스포츠 역시 불문율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중에서도 불문율이 복잡하기로 유명한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야구는 명시적인 규칙부터가 방대한 스포츠다. 미국 국민 3억 명의 삶을 관장하는 미 연방 헌법의 분량이 85페이지 남짓인데, 메이저리그 30개 팀이 지켜야 하는 야구 규칙은 2015년을 기준으로 무려 282페이지에 이른다. 이 방대한 규칙에 더해 복잡한 불문율까지 품고 있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이로부터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야구가 우리들의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스포츠라는 것이다.

가지각색의 불문율

불문율은 세계 각국의 프로 리그에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즉, 특정 리그에서 불문율을 거스르는 것으로 간주하는 행위를 다른 리그에서는 평범하게 용인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는 전통을 중시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무수한 불문율이 득세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불문율이 바로 배트 플립에 따르는 보복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치고 과도한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타자는 다음 타석이나 다음 경기에 매우 높은 확률로 보복을 당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2015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나온 호세 바티스타의 배트 플립을 꼽을 수 있다. 이 사건은 그해의 시리즈를 넘어 이듬해 호세 바티스타와 루그네드 오도어의 ‘일기토’ 사건으로까지 그 여파가 이어졌다.



일본프로야구에는 1964년 왕정치가 세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55개를 ‘외국인 타자’가 깨지 못 하도록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2013년 블라디미르 발렌틴에 의해 마침내 깨지기는 했지만, 무려 50년 동안 유지된 역사와 전통의 불문율이었다.

KBO 리그는 다른 리그처럼 고유한 불문율을 따로 지니고 있지는 않다. 대신 점수 차가 큰 상황에서는 도루나 번트 시도를 자제한다는 등의 보편적인 불문율들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다른 리그와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단연 배트 플립이 정상적인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였다면 무조건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을 정도의 과장된 배트 플립이 KBO 리그 경기에서는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상대 팀도 이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퍼펙트 게임 같은 대기록 달성을 앞둔 투수에게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거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당일과 익일 선발투수 및 불펜 투수들을 제외한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등의 불문율이 있다. 후자의 경우 이렇다 할 사유 없이 벤치 클리어링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에게는 구단이 자체적으로 징계를 내리기도 한다.

존중과 불문율, 그 모호한 경계

불문율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규정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야구라는 경기는 행위 하나하나에 막대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스포츠다. 정도 이상의 갈등을 미연에 차단한다는 점에서 불문율의 존재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불문율은 ‘존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승자는 패자를 무시하지 않고, 패자는 승패에 딴죽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큰 점수 차로 경기를 리드하는 팀이 도루를 자제하는 것은 단순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 행위’가 아니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나름의 방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평화보다는 논란을 불러오는 불문율들도 분명 존재한다. 근래에는 세계 각국의 프로 리그에서 몇몇 불문율의 불합리함에 대한 성토가 줄을 잇기도 했다.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몇몇 사례를 되짚어보자. 2019년 3월 26일 열린 한화 이글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9회 말, 한화가 기아를 13대 7로 크게 리드하고 있었다. 그런데 9회 말 2사 1루 상황에서 한화의 한용덕 감독이 마무리 투수 정우람을 마운드에 올렸다. 세이브 상황이 아니었지만 한 감독에게는 나름의 기용 근거가 있었다. 당시 정우람은 정규 시즌이 개막한 이래 한 번도 실전 등판을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실전에서 컨디션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기아 김기태 감독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김 감독은 정우람이 투입되자 투수 문경찬을 대타로 투입했다. 불펜에 있던 문경찬은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들어섰다. 결과는 삼구 삼진이었다.

김 감독은 경기 후에도 자신의 의중을 밝히지 않았고, 그를 제외한 누구도 이 대타 기용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세간에서는 김 감독이 불문율을 지키지 않은 상대의 행위에 불만을 어필하고자 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패자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했다 여기고는 시위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팬들은 이러한 김 감독의 결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이 행동이 “나는 이미 포기했는데 왜 열심히 하느냐?”는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주어진 아웃카운트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팬들의 주된 여론이었다. 좋은 경기를 선보인 상대 선수들을 가해자로 몰아간다는 지적도 있었다. 상대 팀은 물론 경기를 보러 와준 관중들에게도 명백한 실례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도 살펴보자. 2019년 4월 8일(한국시간) 열린 신시내티 레즈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경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2회 초 홈런 타구를 날린 신시내티의 데릭 디트릭은 그 직후 타구를 감상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4회 초, 피츠버그의 선발투수 크리스 아처는 타석에 돌아온 디트릭에게 주저없이 보복구를 꽂아 넣었다.

아처가 디트릭의 세리머니로부터 불쾌함을 느꼈을 수는 있다. 디트릭의 행위는 분명 상호 존중의 원칙을 먼저 어겼다고 느껴질 수 있는 행위였다. 하지만 함께 고려해봐야 할 점이 있다. 아처는 평소 위기 상황에서 삼진을 잡으면 과격한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선수다. 그럼에도 타자들이 이에 예민하게 반응해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킨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즉, 아처는 본인이 평소 타자들을 존중하지 않았음에도 타자들에게만 자신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던 셈이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사례다. 자신이 존중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존중만을 받으려 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처의 보복이 팬들 사이에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문율=악’은 아니다

모든 불문율이 역효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야구를 경직되고 비합리적인 스포츠로 만드는 일부 불문율의 경우다.

근래 메이저리그에서는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와 브라이스 하퍼, 야시엘 푸이그 등의 스타 선수들이 리그의 인기 회복을 위해 경기를 더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흐름은 선수들의 적극적인 세리머니를 장려하자는 주장으로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는 야구를 경직시키고 속박해온 일부 불문율에 대한 회의론과도 일맥상통한다.

불문율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불필요한 자극을 억제하기 위한 불문율에는 나름의 존재 가치가 있다. 일종의 ‘낭만’으로서의 불문율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불문율이 야구의 재미를 구속한다면, 팬들이 공감할 수 없는 불합리함만을 불러일으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야구의 모든 불문율을 그대로 안고 갈 필요는 없다.

야구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뉠 수밖에 없는 스포츠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승부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경기의 모든 순간을 마음껏 기뻐할 수 있다면 야구는 더욱더 아름답고 낭만적인 스포츠가 될 것이다.

야구공작소
이창우 칼럼니스트 / 에디터=오연우, 이의재


사진=AP/뉴시스, 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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