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수원은 어떻게 포항을 '또 다시' 잡았나
입력 : 2014.09.2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또 이겼다. 지난달, 25개월 만에 포항을 잡으며(4-1승) 상대 전적 1무 7패의 고리를 끊어낸 수원이 이번에도 웃었다. 2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27라운드에서 수원은 각각 후반 39분, 44분에 터진 로저와 염기훈의 연속골로 포항에 2-1 역전승을 챙겼다. "절대 3위 밑으로 떨어지지 말자고 선수들과 약속했다"던 서정원 감독은 "그동안 고비 때마다 주저앉곤 했는데, 올해는 많이 바뀐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 포항의 포백 전환과 '로저vs김광석'의 혈투
경기 전, 포항이 꺼내 든 '포백'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지난 주말 성남전에서 김광석-김준수-김원일의 쓰리백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던 포항은 이번 수원 원정에서는 박선주-김광석-김형일-신광훈의 포백으로 재차 변화를 줬다. 황 감독은 "선수들이 많이 헷갈리고 어렵겠지만, 상대 및 상황에 따라 바꿔야 한다고 본다"라며 수비진 전환의 배경을 설명했고, 서 감독은 "당황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포백이든, 쓰리백이든 우리는 슬기롭게 넘겨 왔다"며 여유를 보였다.

포항의 포백은 상대의 공격 전개 형태와 맞물려 중대한 전술 포인트가 된다. 수원은 양 윙어가 넓게 벌려 뛰는 대신 페널티박스 모서리 근처에 머물며 대각선 방향의 쇄도를 많이 시도했다. 김은선이 아래로 내려가 수비를 분담하고 측면 수비 홍철과 신세계가 올라가는 형태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크로스 개수가 많지는 않았다. 이 경우엔 앞뒤로 늘어선 로저와 산토스가 상대 중앙 수비 두 명을 어떻게 부수느냐가 관건이었다. 즉, 중앙 수비 중 한 명을 끌어내고, 그 뒷공간으로 볼을 연결해 유리한 숫자 싸움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득점의 가능성을 가늠할 요소였다.



황 감독이 중앙 수비를 둘만 세운 건 김광석의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기도 하다. 빠른 발에 활동 반경이 넓고, 힘까지 좋아 상대 원톱을 사전에 봉쇄하는 데에는 적격이었다. 실제 포항은 이 선수가 볼을 끊어낸 지점을 공격의 시발점으로 삼아 빠르게 전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 하지만 그 이면엔 김광석이 흘린 뒷공간에 대한 부담도 존재했다. '나올 때와 안 나올 때'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베테랑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높은 선에서 확실히 끊지 못할 경우엔 수비형 미드필더나 양 측면 수비의 커버 범위도 급격히 늘어났다. 되짚어 보면 지난 수원 원정에서 산토스에게 내준 첫 골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로저는 이번에도 빛났다. 김광석은 줄곧 등 뒤에 바짝 붙어 수비했지만, 로저는 조금 더 일찍 움직이며 활로를 찾았다. 후방뿐 아니라 측면으로도 움직이며 패스 루트를 하나 더 만들어냈고, 공중볼 경합 후 흐른 볼을 덤으로 얻어 크로스까지 제공했다. 볼을 오래 잡지 않고 바로 돌려놓은 터라 수원의 공격 전개는 대부분 포항의 수비 속도를 앞질렀다. 공간 선점에 충실했던 로저 덕에 2선은 여유를 누리게 된다. 산토스는 플레이메이킹이 쉬워졌고, 권창훈은 중거리 슈팅까지 날렸다. 비록 지난 라운드까지의 스탯이 23경기 5골 2도움에 그쳤지만, 로저에겐 '기록'만으로 평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물론 최전방 공격수의 득점은 다다익선이다).



▲ 포항의 선제골, PK 선방에도 고통받은 정성룡
0-0의 균형은 포항이 깬다. 상대 진영에서 주도권을 잡은 수원이 수비진의 집중력에서는 조금 흔들릴 수 있었던 상황. 단번에 넘어온 롱패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후유증은 컸다. 홍철은 완만한 궤적으로 날아온 볼을 본인의 영향권 안에 확실히 놓지 못했고, 고무열의 발이 앞서며 볼은 골키퍼 바로 앞 공간에 떨어진다. 집중력을 갖고 쇄도한 유창현이 먼저 볼을 터치했을 때, 정성룡이 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지 않았다. 다행히 신광훈이 처리한 PK를 정확히 막아냈지만, 선방의 달콤함이 끝은 아니었다.

포항은 전반전 동안 시도한 코너킥 두 개를 모두 골문에 바짝 붙여 연결했다. 첫 번째 코너킥의 경우 채공 시간이 긴 데다 정성룡이 처리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들어와 무위에 그쳤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가까운 골포스트를 겨냥해 낮고 빠르게 연결된 볼에 수원의 코너킥 수비 전형(하단 삽화 참고)은 그대로 찢어졌다. 고차원을 골 라인 바로 앞에 두고, 홍철을 코너플래그 가까운 쪽에 세우며, 로저와 신세계가 경합을 하던 장면에서 유창현의 타점을 방해하지 못 했다. 서 감독은 "훈련을 많이 해도 힘들다. 공격수가 먼저 움직이는 것을 수비수가 캐치하기가 어렵다. 먼저 출발하는 선수를 붙잡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로저가 시작하고, 염기훈이 끝맺은 역전승
포항은 후반 들어 뒷근육이 좋지 않았던 김태수 대신 배슬기를 그 자리에 채워 넣는다. 아시안게임 차출까지 겹치며 미드필더 자원이 부족했던 황 감독의 고육지책이었다. 수원은 측면을 조금 더 넓게 벌린 뒤 권창훈을 깊이 올려 보내 공격 패턴을 다변화한다. 김은선의 수비 분담에 기댄 이 시간대의 전형은 4-1-4-1로 표기해도 무방할 만큼 공격적이었다. 이어 조지훈과 서정진, 조지훈, 하태균을 차례로 투입하며 반전을 노린다. 하지만 측면으로 나간 볼은 다시 골문 쪽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중앙으로 향할 전진 패스 역시 공급로가 차단됐다. 오히려 역습 과정에서 시간을 충분히 활용한 포항의 노련함에 수원은 더 급해진다.

필드골의 가능성이 낮은 상황, 해답은 코너킥에서 찾았다. 전반전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에 실패한 로저는 후반 39분 헤더로 동점골을 만회한다. 뛰어난 키커가 있으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음을 증명한 장면으로 '김광석+김다솔'에 맞선 적극적인 경합이 주효했다. 포항은 숨 돌릴 틈이 절실했다. 어떻게든 상대의 템포를 꺾어놔야 했던 시기에 수원은 계속 밀고 올라왔고, 결국 측면으로 공간을 만든 로저에게 슈팅 각도를 열어주고 말았다. 크로스바 모서리를 맞고 나온 슈팅을 염기훈이 다시 차 넣으며 역전승을 일군 데에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글=홍의택

# 홍의택 씨는 축구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다루기 위해 축구의 모든 것 '스포탈코리아'가 섭외한 외부 필진입니다. 본 기사는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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