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이재성 인터뷰① ''이렇게까지 할 줄 아무도 몰랐을걸요''
입력 : 2014.12.2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셔츠에 니트 차림. 면바지와 운동화. 이재성(전북)은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밥 사주겠다는 말로 친구들을 구슬려 겨우 과제를 마쳤거늘, 슈틸리케호 차출로 기말고사 대체 과제가 늘었단다. "시즌 끝나니 더 힘든 거 같아요'라며 너스레를 떨더니 "F만 안 받으면 되는데, A도 더러 있어요. 석차야 뭐 (안)진범(울산)이가 뒤에서 받쳐주기 때문에 괜찮아요"라며 웃는다.

지난해 이재성이 전북의 레이더망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10월 전국체전 직후에는 정식으로 계약 제의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당시 든 생각은 '분명 좋은 선수는 맞는데, 깡마른 몸으로 프로에서 얼마나 버티겠느냐'는 것. '전북'이었기에 장벽은 더 높아 보였다. 2013년 기준 고려대의 팀 성적은 저조했고, U리그 및 전국대회를 통해 나타난 이재성의 플레이도 크게 두드러지기는 어려웠다.

서동원 고려대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다. "재성이의 성실함은 늘 모범이 되죠"라며 칭찬했으나, 프로 세계는 특별한 무언가를 더 요구했다. 대학에서 1년 더 갈고 닦길 권했던 것도 그 때문. 몇몇 지도자들은 '몸이 여물 시간'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대학에서 날고 기던 선수도 운동의 질과 양, 식단 관리 등 여러 차원에서 졸업 후 1~2년은 지나야 프로 선수와 경쟁할 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틀렸다. 전북 입단(2013년 12월), 데뷔전(2014년 2월), 데뷔골(4월), 아시안게임 금메달(10월), K리그클래식 우승(11월), 첫 국가대표 승선(12월)까지. 시즌이 끝난 뒤에는 시상식, 추캥(축행), 홍명보 자선축구 등 각종 행사에도 얼굴을 내비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지난 1년 동안 일어났다.




▲ 사실 걱정했다. '저 선수 괜찮을까요'라며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처음에는 자유 계약 2명에만 들어가자고 했는데, 제안을 듣고선 엄청 고민했다. 주위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기도 하고. 김태륭 전 코치님은 전북과 관련해 한준희 해설위원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했다".

▲ 덴소컵을 관전한 전북 관계자는 피지컬을 약점으로 꼽았다고 하더라.

"지금 돌아보면 전북에서도 큰 기대는 안 했던 것 같다. 시즌 중반에 다쳐서 쉬기도 했고. 최강희 감독님이 내 플레이를 한 번 보셨다던데, 잘 모르겠다. 사실 입단 동기 (정)종희를 더 눈여겨보시지 않았을까."

▲ U리그 왕중왕전 플레이오프를 마친 뒤 부랴부랴 전북 선수가 됐다.

"드래프트 날 신인들을 소집해 열흘 정도 훈련했다. 경기에 많이 못 뛰었던 선수들이 마무리 훈련을 하는 시기였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와 시설 진짜 좋다'. '훈련도 괜찮네?' 이 정도였다. 다시 휴가를 받았으니 별 느낌 없었다."

▲ 이듬해 선수들이 전원 소집됐을 때에는 공기부터 달랐을 텐데.

"1월 5일에 전체 소집을 하는데, (이)동국이 형도 있고, (김)남일이 형도 있더라. 그분들 자체가 워낙 말수가 없으시니 말할 기회조차도 없었다. 이런 데서 살아남아야 하는구나, 시작이구나 싶었다".

▲ 그런 팀에서 어떻게 눈에 띄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브라질로 떠나기 전 어느 날, 레크레이션처럼 슈팅 게임을 했다. 그런데 볼이 이상할 정도로 잘 맞았다. 그거 알지 않나. 궤적이 기막히게 감겨서 구석에 꽂히는 슈팅. 그렇게 완벽하게 감아때렸다. 다시 볼이 오는데 이번엔 발등에 완전히 얹히는 거다. 어리둥절해 좋아하지도 못했다. 그저 다행이었다".

▲ 브라질에서도 최 감독의 '이재성 앓이'가 계속됐다고 들었다.

"브라질에서 '너 같은 신인 못 봤다'고 하시더라. 원래 이런 분 아니라고 들었는데 말이다. 며칠 뒤에는 따로 부르셔서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기면서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아무리 즐겨도 못 하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올 텐데) 맞다. 즐기면서도 잘해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다(웃음)".

▲ 어떻게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적극적인 수비를 여러 번 칭찬하기는 했다.

"끈기 있게 공을 차는 게 습관이 됐다. 축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몸에 배다 보니 프로에 가서도 그렇게 하게 됐다. 부딪치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하는 식이다. 프로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피지컬적으로 묵직하기는 하지만, 악착같이 하면서 이겨내려 했다".




당돌했다. '신인들의 무덤'에서도 AFC 챔피언스리그 G조 1라운드 요코하마전을 전주성 입성의 날로 잡았다. 데뷔 시즌 30경기 출장에 공격 포인트 10개를 꿈꿨고, 실제 목표치에 근접하게 다가섰다(26경기 출장 4골 3도움). 하지만 이재성도 신인은 신이이었다. 대선배 이동국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몸을 뒤척였던 초년생은 축구 게임으로 룸메이트 김기희와 가까워지며 전북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 이동국은 얼마 전 신인 선수 교육에서 "이재성은 룸메이트를 잘 만났다. 코를 고는 것도 가만히 뒀다"라며 폭로(?)했다.

"동국이 형과는 원정 때마다 방을 같이 썼다. 아마 브라질 전지훈련 중 임시 클럽하우스 건물에서 호텔로 옮겼을 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형이 대뜸 '너 코 고냐'라고 물어보시더라. 아무 생각 없이 '피곤하면 골아요'라고 했다".

▲ 코 고는 사람들의 전형 아닌가. '피곤하면'이라는 전제는 있으나 마나다.

"그런데 문제는 코골이가 아니었다. '코 고냐'는 말을 한 번 들으니까 아무리 자려고 해도 긴장이 되는 거 아닌가. 조금만 움직여도 이불이 '부스슥'하는 소리가 나고. 진짜 최대한 안 움직이려고 하는데, 배에서 이상하게 꼬르륵 소리가 났다".

▲ 그날 밤 제대로 못 잤을 것 같다. 한 소리 듣지는 않았나.

"정말 참으려고 했는데 이게 도저히 멈추질 않는 거다. 갑자기 동국이 형이 '아 뭐냐고'라며 성을 내시더라(웃음). 이젠 편해지고, 성격 파악도 되지만 그땐 정말 안절부절못했다".

▲ 전북 김기희, 아시안게임 대표팀 윤일록 등 또 다른 룸메이트의 제보는 없었나.

"같은 방 쓰는 기희 형은 맨날 코 곤다고 구박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너 오늘은 잠꼬대까지 하더라'라며 일일이 알려준다. (혹시 이갈이도 하나) 이는 진짜 갈지 않는다".

▲ 김기희와의 동거는 어떤가. 나이 차가 크지 않아 잘 어울려 놀 것 같은데.

"형과는 위닝일레븐을 엄청나게 한다. 정말 시간만 나면 했다. 축구 게임을 하면서 패스 줄기를 생각하고 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되고. 아주 좋은 것 같다. 골 넣고 막 뛰어다니고, 춤추면서 약 올리고. 그러면 발로 한 번씩 걷어차고, 차이고 한다. 다른 방 형들이 '잠 좀 자자'고 뭐라고 한다(웃음)".

▲ 게임에 목숨 거는 게 남자들 습성이다. 내기도 걸고 할 텐데.

"물론이다. 간식 내기, 밥 내기, 소원 들어주기 등등 한둘이 아니다. 아, 심부름하기도 있다. 샤워실이 지하에 있다 보니 세면 도구 챙겨오기가 진짜 귀찮다. 사우나 갈 때 파우치 들고 오기 이런 것도 한다".

▲ 파우치를 들고 오는 편인가. 들고 오게 하는 편인가.

"7대 3 정도로 내가 우세하다. 주로 레알 마드리드를 골라서 하는데, 바르셀로나나 맨체스터 시티를 고르는 기희 형이 밀린다. 게임에서는 무조건 호날두다. 속칭 '팀빨', '선수빨'로 하는 게 제맛이다".




본인을 알아보는 팬도 늘었다. SNS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벅찬 수준. 특히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는 말에 외모 덕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도 '외모 순위'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고만고만하게 못생긴 사람들끼리 순위를 정하는데요. (최)보경이 형,(이)규로 형, (권)경원이 형보다는 제가 낫다고 봅니다"라며 잘라 말했다. 이내 "형들은 인정 안 하더라고요'라며 덧붙인다.

▲ 학성고 시절 까까머리, 고려대 시절 꾸밈없는 모습과 비교하면 참 많이 세련됐다.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다. 어린 학생들이 많이 좋아해 준다. 사실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사진은 팬분들이 다 보정해줘서 그 정도다. 얼굴에 자신감 있는 편은 절대 아니다".

▲ 이동국, 김남일의 틈 속에서 자신감이 하락했을 만도 하다.

"동국이 형이 언젠가 '신인상(영플레이어상) 받으려면 잘 생겨야 한다'라고 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승대(포항) 형보다 못생겨서 상 못 받은 거 아닌가 싶다(웃음). 동국이 형, 남일이 형 보면서 그런 생각도 한다. 잘 생긴 데다 축구까지 잘하면 어떨까".

▲ 그래도 젊음이 무기 아닌가. SNS상 소통도 활발한 것 같고.

"처음에는 메시지가 오면 일일이 답장도 해드렸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 정말 죄송하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시간이 될 때마다 한 번에 답을 드리고 있지만, 괜히 '변했구나'란 말이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 경기 후 선물 꾸러미도 한 아름씩 들고 가던데.

"그게... 전북 입단 프로필에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다. 거기에 초콜릿을 적었는데,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전혀 몰랐다. 팬분들이 초콜릿만 사오시더라. 방에도 엄청나게 쌓여 있고, 나눠 먹어도 줄질 않는다. 초콜릿도 좋은데, 편지나 사진처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 이제 편지만 잔뜩 쌓이는 거 아닌가. 주로 어떤 내용인지.

"손수 써주신 자필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이재성 선수를 보고 힘이 난다', '덕분에 꿈을 찾았다'는 말까지 해주신다. 진짜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구나 싶어 진짜 신기하다".

▲ 기억에 남는 팬도 하나둘 생겼을 것 같다.

"대학생 때부터 연락해온 친구도 있고. 매일매일 연락 오는 친구도 있다. 대구에서 클럽하우스까지 찾아온 친구도 있었다. 봉동까지 찾아오는 게 버스도, 택시도 타야 하는데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나. 그렇다고 밥 사줄 식당도 제대로 없고. 참 미안하다".

▲ 봉동에서의 영향력은 전주에서도, 서울에서도 유효한가.

"사실 축구장 아니면 거의 없다. 더욱이 서울에서는 잘 모르더라. 체육교육과다 보니 한 번쯤 알아보는 정도? 축구에 관심 없으면 그마저도 아니다. (전주에서는 통한는 말인가) 전주 시내에서는 모자도 쓰고 다닌다. '사진 찍어요', '사인해주세요'라고 하시기도 한다. 아직은 한 번밖에 없지만".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글=홍의택
사진=Sports KU, 전북현대,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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