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사네, 레알을 뒤흔든 열아홉 청년
입력 : 2015.03.1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이번 시즌 끝날 때까지 인터뷰 사절". 10일(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마드리드와 샬케04의 2014/2015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3-4로 패한 호날두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8강행을 확정 지었어도, 하마터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뻔했으니 뒷맛이 개운할 리 없었다.

그 중심에 르로이 사네(19,샬케)가 있었다. 전반 29분, 절룩이던 추포-모팅과 바통을 터치한 사네는 훈텔라르와 짝맞춰 3-5-2(3-1-4-2) 시스템의 투톱 역을 맡는다. 리그 출장 6경기(총 86분 소화, 경기당 14분 출전), 그것도 모두 교체 투입돼 한 골을 뽑아낸 게 전부였다. 디 마테오는 챔피언스리그 출전 기록이 전무한 사네를 과감히 내보냈고, 이 열아홉 청년은 디펜딩챔피언 레알의 혼을 빼놓았다.



이날 추포-모팅은 살짝 얼어 있었다. 1차전을 0-2로 지고 스페인 원정을 떠나왔다는 부담과 조급함이 얽혔을 것. 훈텔라르 역시 득점 전까지는 경기력에 편차를 보였다. 큰 무대에서 맞는 절체절명의 순간일수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관록을 높이 사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선수가 해답일 수도 있다. 끓어오르는 패기로 한 번씩 미치는 선수가 있음을 디마테오는 믿었을 터다.

갓 투입된 사네는 시야를 확보하지 못 한 채 패스하는 등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반에 접어들며 차차 경기력을 회복해 나간다. 뭔가를 보여주려는 욕심과는 거리가 멀었던 드리블은 볼을 툭툭 치기보다는 질질 끄는 형태로 이뤄졌다. 볼과 발의 거리가 가까워 거의 붙어있는 듯했는데, 이는 재빨리 방향을 전환하거나 순간적으로 템포에 변화를 줘 상대 수비의 타이밍을 빼앗기에 유리했다.

케디라와 베일에 막혀 전진할 수 없게 되자, 유유히 돌아서는 여유까지 보인다. 드리블을 치다가도 매끄럽게 돌아서는 움직임은 183cm 신장치고는 상당히 유연하다는 방증이었다. 몸의 중심이 지나치게 높지 않아 돌아서는 속도가 준수했고, 볼을 본인 몸쪽으로 붙여 잘게 많이 터치하면서 상대가 빼앗기 어렵게 했다. 평소 훈련처럼 편하게 드리블하던 모습엔 베테랑 부럽지 않은 침착함이 묻어났다.



후반 12분에는 팀 세 번째 득점까지 뽑아낸다. 사네는 '0-1, 1-1, 1-2, 2-2, 3-2(홈팀 레알-원정팀 샬케)' 순으로 역전당한 샬케엔 크나큰 희망이었다. 거의 모든 볼 터치를 왼발로 했음에도 레알 입장에서는 '메시의 왼발'만큼 익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슈팅 각도를 좁혀야 했던 코엔트랑은 뒤로 쇄도하던 상대 공격수를 의식하느라 주춤했고, 사네는 활짝 열린 곳으로 기가 막히게 감아 때린다(상단 캡처 참고).

그 외 슈팅에서도 특징을 보였다. 힘을 완벽하게 실어 볼이 묵직하게 얹혀 나가는 느낌. 곧게 뻗어 나간 볼에는 스핀이 크게 먹지 않았는데,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도 뚝 떨어지는 궤적 변화가 발생해 골키퍼 카시야스도 반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슈팅 직전의 임펙트를 제대로 줬다는 것. 신체의 좌우 밸런스가 확실히 잡혀 있고, 디딤발을 정확하게 놓는 등 완벽한 자세로 슈팅을 쐈다는 얘기도 된다.

슈팅 시 스윙이 크지 않았다는 점 역시 짚어봐야 한다. 보통 긴 방망이로 타격하는 경우, 휘두르는 축은 짧은 방망이와 비교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축구 선수도 마찬가지다. 다리가 길수록 볼을 강하게 처리하는 동작에서 속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네는 슈팅 직전 과하지 않은 모션으로 볼에 발을 대는 과정을 상당히 짧게 가져갔다. 볼을 안정적으로 잡아두고, 각도를 찾는 사전 작업까지 빨랐던 덕에 상대 수비와 골키퍼가 상황을 예측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특정 경기, 몇몇 장면만으로 선수 개인을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네의 유형이 레알전 양상에 들어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 압박은 대체로 헐거웠고, 사방에서 둘러싸는 속도 역시 늦었다. 공수 전환이 빨라 치고받는 그림이 많았던 대신, 좁은 공간을 억지로 뚫어야 하는 장면은 적었다. 한 단계 높은 압박을 가했을 때, 얼마나 잘해낼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앞서 언급한 드리블, 슈팅 외 나쁜 버릇이 줄줄이 나타날 수도 있다.

단, 흥미로운 신인이 등장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전까지 사네가 가장 긴 시간을 소화한 건 지난해 12월 함부르크전(25분 출장)이었다. 그랬던 청년이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16강 2차전에서, 그것도 베르나베우에서 레알을 상대로 치렀다. 61분을 소화하며 세 개의 슈팅(유효슈팅 2개)을 날렸고, 골까지 기록했다. 힘이 붙고, 경기를 읽는 능력이 배가된다면 괜찮은 보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글=홍의택
사진=샬케, SPOTV+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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