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플러스] '슬로우 스타터' 판 할 감독, 이 남자가 사는 법
입력 : 2015.04.1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이경헌 기자= 감독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다. 축구가 개인보다는 팀 스포츠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감독의 자질이 부족하다면 팀의 명운과 함께 모두가 위기라고 느끼는 시점에서 그대로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기회를 또 다른 성장으로 이끄는 게 바로 '명장의 조건'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슬로우 스타터' 루이 판 할 감독. 바로 이 남자가 사는 법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떠난 맨유는 그라운드 위를 표류했다. 에버턴에서 인상적인 지도력을 선보였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지난 시즌 퍼거슨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시즌 막판 경질을 당했다. 특히 맨유는 모예스 감독 체제 하에서 수많은 불명예를 떠안으며 자존심에 금이 갔다. 모예스 감독 역시 '기록 파괴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모예스 감독의 전과(?)는 다음과 같다.

- 19시즌 만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 실패
-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첫 두 자릿수 패배(모예스 감독 체제 하 10패, 총 12패)
- FA컵 3라운드 조기 탈락(퍼거슨 감독 체제 하 26년 동안 단 1차례)
- 클럽 역사상 홈 경기에서 최초로 스완지 시티에게 패배
- 1978년 이후 처음으로 홈 경기에서 웨스트브롬위치에게 패배
- 1972년 이후 42년 만에 홈 경기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게 패배
- 1993년 이후 21년 만에 홈 경기에서 에버턴에게 패배
- 1984년 이후 정규리그에서 스토크 시티에게 첫 패배
- 리버풀 연고 팀(리버풀, 에버턴) 상대로 시즌 4전 전패(0득점 7실점)
- 2003/2004시즌 최소 골득실차(+29) 기록 경신(+21)



맨유는 모예스 감독과의 악연을 씻기 위해 유럽 빅리그와 월드컵 무대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루이스 판 할 감독을 영입했다. 라다멜 팔카오, 앙헬 디 마리아, 마르코스 로호, 안더르 에레라, 달레이 블린트, 루크 쇼 등 전력 강화를 위해 약 1억6500만 파운드(약 2818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지출했다. 하지만 판 할 감독 체제에서도 맨유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경기 초반 임펙트는 모예스 감독에 못지 않다. 승격팀 레스터 시티에게 3-5로 패하자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1984년 12월 노팅엄 포레스트 전 이후 30년 만에 2골차 이상 리드를 역전패한 것이며 승격팀에게 4골 이상 허용한 것은 1878년 팀 창단 이래 136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에 여론의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3백과 4백을 오가는 전술 운영, 웨인 루니의 중앙 미드필더 배치, 롱볼 논란, 라이언 긱스와의 불화설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맨유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팀으로 변모했다. 특히 올해 들어 반전 드라마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 단 2패만 내줬다. 특히 맨유는 최근 리그 6연승을 내달리며 19승 8무 5패 승점 65점으로 2위 아스널(승점 66)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맨유가 리그에서 6연승 이상을 거둔 건 알렉스 퍼거슨 감독 시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32라운드가 종료된 현재 이미 지난해 모예스 감독이 기록했던 승점 65점을 가뿐히 넘어섰다.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 여부를 걱정해야 했던 시즌 초반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아쉬움도 있었다. FA컵에서 고배를 마신 것. 맨유는 지난달 아스널과의 잉글랜드 FA컵 8강전서 1-2로 패해 우승의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스널전 패배는 보약이 됐다. 아스널전 패배 이후 맨유는 토트넘, 리버풀, 애스턴 빌라, 맨체스터 시티 등 쉽지 않은 상대를 맞아 4연승을 이어갔고 한 경기당 3득점에 달하는 막강 화력을 뿜어냈다. 죽음의 일정 속에서 물음표에 가까웠던 후안 마타, 안데르 에레라, 마루앙 펠라이니, 애슐리 영은 맹활약을 펼치며 느낌표를 선사했다.

프리미어리그가 중반으로 치닫는 12월 이후 판 할 감독이 이끄는 맨유의 진짜 무서움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한 영국 '데일리 메일'의 보도는 점차 예언이 되는 모습이다. 시즌 개막 전 '데일리 메일'은 "17년간의 클럽 감독으로 활약한 판 할 감독은 시즌 초반에는 조용히 보낸 뒤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성적을 내는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였다. 이는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맨유의 팬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판 할 감독은 클럽의 감독으로 나선 리그에서는 초반 평이한 성적을 보인 다음 리그 중반으로 접어들 때 쯤 팀을 선두권에 올려놓는 패턴을 보였다. 바르셀로나 시절을 비롯해 AZ알크마르와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던 시절에도 '슬로우 스터터'의 성격이 짙게 나타났다. 2009/2010시즌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을 처음 맡았을 때도 시즌 초반 3경기에서 2무1패를 기록하다가 우승으로 반전에 성공했다. 어느 팀을 맡더라도 정체성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판 할 감독은 맨유에서도 서서히 승리로 화답하고 있다.



여전히 올드 트라포드에는 퍼거슨 감독의 향수가 드리워져 있고 지난 시즌 최악의 좌절감을 맛봤던 맨유 팬들이라면 지금 판 할 감독의 '슬로우 스타터' 기질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맨유는 누구나 어려워하는 팀이 될 수 밖에 없다. 판할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맨유는 큰 야망을 지닌 클럽이고 나도 야망을 가지고 있다. 맨유와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만약 다가오는 첼시전마저 승전보를 울린다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울림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맨유 페이스북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