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장결희는 장결희다
입력 : 2015.09.0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지난 1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장결희(17, FC 바르셀로나 후베닐A)를 만났다. 낯을 가렸다. 말수가 적었다. 어색하게 웃었다. 2014년 9월, 태국서 열린 AFC(아시아축구연맹) U-16 챔피언십 4강 시리아전. 상대 패스를 가로채 30m 가까이 치고 나가 왼발로 쏜 골. 격정적으로 환호하던 그 모습과는 달랐다.

올해로 바르셀로나 생활 5년째. 어쩌면 스페인어가 더 익숙하다. 의사를 전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하나 되긴 어려웠다. 경쟁자끼리는 말도 안 섞는 환경에서 줄곧 휴대폰을 쥐는 버릇이 생겼다. 라 마시아(La Masia. 스페인어로 농장. FC 바르셀로나 유스팀 숙소에서 선수 육성 정책까지 총칭) 와이파이가 꺼진다는 밤 11시까지.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둥이며, <우리 결혼했어요> 김소은네 커플이며, 빠짐없이 챙겼다.

외롭고, 무서웠단다. 그렇게 울었단다. 옛 얘기를 털어놓다 말문이 트였다. 지난주엔 까탈루냐 광장으로 나가 한식을 먹고 와 좋았단다. 그리도 소박한 생활을 특별한 것인 양 늘어놓는 장결희는 한국 나이로 고등학생 2학년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어 수다를 쏟아내고선 아쉬움 곱씸으며 헤어졌다. 그리 크지 않은 키. 그리 넓지 않은 어깨.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던 그 뒷모습이 무거웠다.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올랐다. 늘 누리는 줄만 알았다. 웬걸. 잃는 것도 많았다.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이 먼저 걸어간 발자취가 탄탄대로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장 마리 동구, 아다마 트라오레(현 애스턴 빌라)와 한 곳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받지도 못했다. 장결희의 축구는 쉼 없이 요동쳤다. 축구든, 뭐든 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다.

자긍심이 꺾였다. 어린 나이에 걸출한 클럽에서 손 내밀었다? 어찌 이름값 없었을까. 서울 숭곡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자했다. 유소년 쪽에 관심 뒀다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하지만 잘날수록, 노출될수록 치이는 일도 늘었다. 주위에서 가만두질 않았다. 앞서가는 이만 조명하면 됐거늘. 이를 더 빛내고자, 제 속도로 가고 있는 장결희까지 비교하며 뒤흔들어 놓았다. 자연스레 본인이 제 갈 길 제대로 가고 있는지 헷갈려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측근은 이러한 세태를 그렇게도 원망스러워했다.

장결희는 바르사 삼총사 중 가장 늦게 마시아 생활을 끝냈다. 올해 4월, 온 가족이 모두 스페인으로 향했다. 기존 숙소에서 짐도 채 찾아오지 않고, 가족이 사는 집에 얼른 눌러앉았다. 통학 버스로 학교를 오가고, 운동장에서 땀 흘리던 쳇바퀴 생활도 변했다. 심적인 안정을 찾아가며 '하려고 하는 의지'가 남달라졌다. 휴일이면 먼저 웨이트장에 나선다. 쉴 때면 어김없이 볼을 만지며 감각 유지에 애쓴다.

'2015 수원 컨티넨탈컵 U-17 국제청소년축구대회'에 참가 차 광복절 직전 입국했다. 최진철 감독이 이끄는 U-17 대표팀 소집에 앞서 안익수 감독이 지도하는 U-18 대표팀에 먼저 합류했다. 지난 4월, 수원JS컵에서 장결희를 배제한 안 감독이 이 선수를 직접 보고자 했던 것. 아주대, 한양대와의 연습 경기에서 잠깐씩 뛰며 예열했다. 지난 6월 당한 엉덩이 부상을 완치하고, 후베닐A에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던 중 얻은 소중한 기회였다.



지난 28일 U-17 대표팀은 연세대전으로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렀다. 장결희는 오른쪽 윙어로 총 70분을 소화했다. 이틀 전 열린 명지대전에서 비를 맞은 뒤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대학 최강위권인 연세대를 만나다 보니 상대성에서 밀렸다. 장결희가 시종일관 맞붙은 선수는 4학년. 수가 다 읽혔다. 힘에서, 체격에서 밀렸다. 그러면서 또 많이 배웠을 것이다.

본 무대에서 얼마나 잘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장결희가 절정의 경기력을 뽐낸다 해도 상대 팀 나이지리아, 크로아티아, 브라질이 우위에 있다면 쉽지 않다. 체력적인 변수는 더하다. 입국 후 대학팀과 총 네 차례 맞붙으며 노력했다지만, 한창 경기를 뛰어온 동료들과 비교해 표가 날 수밖에 없다. 4대 4 미니 게임 정도에 그쳤던 소속팀 바르사의 훈련 내용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장결희가 국내에서 서는 첫 공식 무대. '보여주려는 각오'가 대단할 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이 선수에게 주어진 건 축구, 그 자체가 아니다. 조금씩 자리 잡는 기술, 체격, 체력 등을 갖고 펼치는 멘탈 게임이다.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인을 휘둘러온 외부 환경에 맞서 장결희다울 수 있느냐의 문제다. '누구의 라이벌', '누구의 동료'가 아닌, 정체성을 갖고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10월 칠레서 열릴 U-17 월드컵은 물론, 앞으로 롱런할 자양분을 챙기는 것이 2일 저녁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시작하는 수원 컨티넨탈컵에서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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