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포커스] 황선홍 감독 떠나던 날, 스틸야드 현장 스케치
입력 : 2015.11.3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포항] 홍의택 기자= 서포터즈 석에서 '황선홍' 석 자를 연호했다. 선수 콜과는 달리, 감독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포항은 분주했다. 29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최종전. 단순히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아닌, 5년간 함께한 황선홍 감독과 이별하는 날이었다. 구단 측은 '고맙습니다, 황선홍', '우리 마음 속 영원한 황새' 문구를 넣은 클래퍼와 매거진을 배포했다.

황 감독도 실감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는 "마지막인데 손이라도 한 번씩 잡아야지"라면서 취재진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어 "98년에 포항을 떠날 때는 부상을 당해 그전부터 경기를 뛰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경기가 마지막인 줄 몰랐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번에는 끝을 보고 달려왔다는 점에서 달랐다. 경기 전 "아직은 평소와 똑같다"던 그는 "끝나보면 실감이 나려나. 경기 도중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며 심경을 전했다.

상대가 서울이라 더 특별했다. 황 감독은 최용수 감독과 물고 물리는 숙적이 됐다. 이에 황 감독은 "내가 떠난다고 해서 최 감독이 섭섭해하겠나. 오히려 앓던 이 하나 빠지는 것 아닌가"라며 웃어 보였다. "서울은 유독 지기 싫은 팀이다"라면서도 "최 감독이랑 하면 긴장감과 부담감이 있어 재밌다. 피곤하기는 해도, 고민을 거듭하며 지도자로서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던 그는 천생 감독이었다.



경기 직전, 관례 차 인사를 나누는 두 감독에게 카메라가 몰렸다. 맞잡은 손을 푼 이들은 꽉 한 번 껴안으며 여느 대결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경기는 뜨거웠다. 전반 15분, 포항은 최재수의 프리킥 골로 앞섰다. 수비벽 위를 절묘하게 넘긴 볼이 골문 구석으로 꽂혔다. 벤치로 달려간 선수단은 큰절을 올리며 떠나는 스승을 기렸다. 골키퍼 신화용과 손준호는 함께하지 못했다. 손준호는 경기를 속개하려던 상대를 막고자, 중앙선 너머에 머물며 시간을 벌었다.

양 팀은 쉼 없이 치고받았다. "경기 전 최 감독에게서 문자로 연락이 왔다"고 알린 뒤 "마지막 경기에 대한 선물은 죽도록 뛰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니냐"며 승리욕을 발동한 황 감독이었다. 경기 내용도 이에 걸맞은 높은 수준으로 전개됐다.

후반 35분 몰리나의 동점 골에 흔들렸던 포항은 경기 막판 리드를 되찾아왔다. 측면에서 넘어온 볼에 몇 차례 슈팅이 무산되며 탄식을 자아내던 중, 강상우가 마침내 골문을 열어젖혔다. 선수단 모두 달려가 황 감독에게 안겼다. 2013년 울산전에서 후반 50분 우승을 뒤집었듯, 경기 막판까지도 강렬함을 유지한 포항식 축구가 재현됐다.



그렇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이어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배경으로 깔린 헌정 영상이 전광판에 흘렀다.

황 감독은 강철 수석 코치를 품에 안고선 놓아주질 않았다. 8년 전 부산에서부터 '황선홍 축구'를 함께 만들어온 동반자였다. 주장 황지수는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황 감독이 포항과의 결별을 선언한 뒤 여러 번 실명을 언급하며 각별히 여긴 고참 선수였다. 팬들은 경기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그 앞에 선 황 감독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며 마이크를 잡았다.

"감독으로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신 포스코 그룹, 포항 스틸러스 구단, 선수 때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원해주신 포항 축구 팬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5년간 포항 레전드로서 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하루하루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어느 순간 팀도, 저도 발전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싶었고, 그 시기를 올해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앞으로도 채워가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선수들, 코칭 및 지원 스탭들 위해서도 큰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못난 감독 만나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황 감독은 지난날에 대해 '미련'이란 표현을 여러 번 붙였다. "고생한 선수들에게 보람을 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안 돼 아쉽다"던 그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도 그렇고, 미련이 많이 남는다"며 회고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도 3개의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포항에서의 100승을 채우지는 못했어도 '포항 축구'라 부를 만한 유산을 남겼다. 이러한 위업을 뒤로 한 채 잠시 쉼표를 찍기로 한 황 감독은 후일을 기약했다. "계속해서 도전하는 게 인생 아닌가. 감독이 끝이 어디 있겠나"라면서.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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