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 인포] To. 판 할, 퍼거슨의 '첫 시즌'이 답한다
입력 : 2016.02.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루이스 판 할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25라운드 첼시와의 대결에서 1대1로 비기며, 승점 1점 획득에 만족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본다면, 최근 몇 경기 동안 이어졌던 좋은 흐름은 이번 라운드에서도 유지된 셈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들어서기 전까지 제시 린가드의 터닝 득점으로 리드를 잡고 있던 맨유는 디에고 코스타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맨유 입장에서는 아쉽지 않을 수 없는 경기로 마무리 되어버렸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경기 직후 있었던 판 할 감독의 인터뷰에서는 흥미로운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첼시의 사령탑에서 물러난 바 있었던 조세 무리뉴 감독이 판 할 감독의 후임으로 온다는 소문에 대해 판 할 감독은 “당신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구단들이 왜 부인하겠느냐”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또한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을 것이며, 나도 당신들이 내일 해고될 것이라고 말하겠다”라며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후 최근 성적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하는 도중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첫 시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맨유의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퍼거슨 감독의 첫 시즌을 빌려 이야기했다.

판 할 감독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판 할 감독의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 해는 리그 4위로 마감했으니, 퍼거슨 감독이 처음 맨유에 왔던 1986-1988시즌에 11위로 리그를 마무리 했던 사실을 들춰내는 것도 판 할 감독의 입장으로선 이해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판 할과 퍼거슨과는 비교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판 할 감독이 말하는 ‘퍼거슨의 첫 시즌’은 어땠을까?

퍼거슨이 오기 전 맨유는 어떤 클럽이었을까?

(1986년, 맨유 감독 부임 후 찍은 사진)

1974년 32살의 나이로 스코틀랜드 이스트 스터링셔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 퍼거슨 감독은 당시 주급 40파운드(한화 6만 9,560원)를 받으며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후 세인트 미렌을 거쳐, 에버딘에서 약 10년동안 감독 커리어를 쌓은 퍼거슨 감독은 1986년 11월 6일 맨유로 부임하게 된다. 당시,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총 다섯 시즌 가량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던 론 앳킨슨 감독이 경질되면서, 그 자리에 퍼거슨 감독이 앉게 되었다.

하지만, 퍼거슨이 맨유에 부임했을 당시, 맨유의 순위는 21위였으며 리그에는 22팀이 전부였다. 팀에 부임한지 이틀 만에 치러졌던 옥스포드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2대0 승리를 기록하면서, 맨유에서의 첫 지휘를 시작했다. 이후, 남은 29경기에서 11승 10무 8패를 기록하며 리그 11위로 마감했다. 부임 후 10계단이나 상승시켜 리그를 마감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있어서 좋은 결과로 받아들여졌냐는 것이다.

판 할 감독이 맨유로 부임해, 많은 돈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4위를 이뤄내도 비판에 여론이 가시지 않는 것처럼, 그 당시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맞는 기준이 있었다. 실제로, 퍼거슨 감독이 부임 전에도 맨유는 위대한 클럽 중 하나였다. 맨유 역사는 물론, 현대 축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매트 버스비가 그 중심에 있었다.

버스비는 우승트로피나 성적으로 결론 지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버스비는 맨유를 통해, 현대 클럽 문화의 시스템을 실험하여 성공한 감독이다. 감독의 권한을 최고로 상승시켜 자율권을 얻어냈고, 선수 선발의 책임은 물론 독자적인 훈련방식을 추구했다. 또한 1952년 팀의 노쇠화로 인해 급격한 추락을 맛 본 버스비는 유소년 클럽을 고안해냈다. 이 점은 ‘감독의 지위 상승’에 이어, 현대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번째 공헌이었다. 그 성과로 인해 1950-60년대 맨유는 첫 전성기를 맞이했다.

1945년부터 1969년까지 맨유를 지휘했던 버스비 감독은 리그에서만 총 5번의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두 번의 FA컵, 그리고 1968년에는 유러피언 컵(현 챔피언스리그)까지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뮌헨 참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축구계의 아픔’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뮌헨 참사’ 이후 팀을 재건하는 데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던 버스비 감독이 맨유를 떠나고부터 15년 가까이 ‘암흑기’를 맞이했던 맨유였다. 윌프 맥기네스, 프랭크 오파렐, 토미 도허티, 데이브 섹튼 그리고 론 앳킨슨까지 많은 감독들을 거쳐 퍼거슨 감독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버스비 감독 이후, 걸출한 지도자를 발견하지 못했던 맨유에게 있어서 퍼거슨 감독은 실제로 버스비와 퍼거슨 사이에 있었던 5명의 감독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첫 시즌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고 두 번째 시즌 곧바로, 맨유를 리그 2위에 올려놨던 퍼거슨 감독의 역량은 오히려 기대보다 더 높은 결과치를 이끌어냈다.

#전격비교
퍼거슨의 첫 시즌 VS 판 할의 첫 시즌




높은 기대치와 낮은 기대치에서 시작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첫 시즌에서 두 감독 간의 확연한 차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이적료 부분이었다. 물론, 80년대 후반과 현대 축구 흐름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오류가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판 할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퍼거슨의 첫 시즌’과는 조금 다른 결과였다.

판 할 감독은 단지 11위라는 순위만을 놓고 판단했던 것일까? 단 한 명의 선수도 영입하지 않고,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퍼거슨의 첫 시즌’은 판 할 감독이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두 번째 시즌에 들어서도 퍼거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판 할 감독이었다.

맨유에서의 29동안 39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퍼거슨 감독과의 비교를 자처해버린 판 할 감독이다. 많은 팬들 사이에서는 판 할 감독이 퍼거슨의 ‘첫 시즌’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해답은 판 할, 그 자신에게 있다.

글, 그래픽 = 노영래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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