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싸움도 불사하는 유럽 축구... 국내와 어떻게 다른가
입력 : 2016.08.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본질은 같다. 골대 안으로 볼을 차 넣어 승패를 가른다. 하지만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다른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과 유럽. 거리감은 많이 줄었다. 1만 km씩 떨어져 있다 해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해 현격히 단축했다. 유럽에서만 쓰이는 선진 훈련법? 곧장 웹을 타고 한국으로 날아오는데,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코칭 메시지는 다를지라도) 훈련 프로그램 내용 자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축구 전반에 깔린 기본적인 태도'. 훈련장 온도 차부터 극명하다. 스파크 일으키다 아예 불까지 붙는 게 유럽이다. 주먹다짐도 마다치 않는 아찔한 분위기에 누군가 실려 나갈 듯 불안하다.

치열하다. 아니, 잔인하다. 이토록 피 튀기는 이유는 늘 100% 그 이상을 짜내기 위함.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인종 차별'이 청소년 축구 팀 내에서까지 심심찮게 튀어나온다. 교묘히 패스를 안 주는 것은 둘째 치고, 말조차 안 섞는 경우도 나타난다. 어떻게든 경쟁자(그 대상이 아시아인이라면 더더욱 심하다)를 누르고 생존해야 한다는 사고가 만연한 까닭이다.




#1. 훈련 도중 골 먹었다고 땅을 치더라
바르셀로나 후베닐A 훈련을 며칠 참관했을 때다. 훈련장에서 취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얼얼한 충격을 받았다. 유치한 장난을 치다가도 이내 돌변해 살벌함을 자아냈다.

한쪽 골대는 고정하고, 또 다른 골대를 중앙선 즈음으로 당긴다. 절반으로 축소된 구장에 양 팀 선수들을 빼곡히 채운다. 이래저래 과정을 만들어 슈팅까지 쏘게끔 유도한다. '미니 게임', '슈팅 게임'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훈련법. 국내에서도 자주 한다.

문제(?)의 장면은 일대일 상황에서 나왔다. 공격수의 볼 터치가 길자, 골키퍼 역시 타이밍을 잡고 돌진했다. 쾅. 충돌 이후 세컨드 동작이 관건이었다. 공격수가 먼저 일어나 튀어 오른 볼을 캐치했고, 빈 골문으로 가볍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골키퍼가 분을 못 이겨 땅을 내려쳤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수비수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왜 이런 상황 만들었느냐는 제스처를 연발했다.

'대체 저 골이 뭐길래'. 그런데 당사자들은 이런 장면 하나에 발버둥을 친다는 것이다. 해당 선수가 별나서가 아니라, 흔한 모습이란다. 사실 국내 훈련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초, 중, 고, 대를 아우르는 아마추어든, K리그 클래식 및 챌린지로 통하는 프로든 이 정도로 격하게 맞붙는 적은 거의 없었다.

문득 김학범 성남 FC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럽 애들은 훈련 때도 골 넣고 세레머니한다니까". 호날두가 훈련 중 골 넣고 "우(Siu)~" 소리 내며 달려가던 그 영상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았으리라. 이들에게 훈련이란 단순 연습이 아니었다.




#2.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경쟁, 생존자만 데려간다
위와 같은 행동들이 나오는 이유. 한국 선수보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월등히 커서? 단순히 '살기 위해서' 정도로 해둬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사소한 기 싸움에서부터 입지가 줄다 보면 끝내 생존하기 어렵다는 셈이 스며있다.

베이스는 경쟁이다. 늦여름 시작하는 시즌은 이듬해 4~5월 막을 내린다. 그 반환점인 1월을 넘어갈 때면 공기부터 달라진다. '구단이 선수를 내다 버린다'는 표현이 있다. 10대 초반 어린 나이에도 팀이 요하는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바로 아웃. 일류 팀에 있던 선수가 어느새 이류, 삼류로 떨어진다. 구단 측은 살아남은 이들에 타 팀에서 영입해 온 자원들을 추가해 다음 시즌을 꾸린다.

생사가 확정되기까지 그 과정 하나하나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구조다. 실전은 당연하며, 연습 게임에도, 심지어 훈련에도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실전, 연습 경기, 훈련. 각각의 격차가 작은 것도 이 때문.

최근 한양대와 함부르크 SV U-23의 친선전을 관전했다. 함부르크 내 2군 팀으로 1군 데뷔를 노리는 이들도 꽤 됐다. 뇌리에 박힌 건 그들의 볼 차는 실력이 아니다. 그보다는 함부르크 U-23 개개인의 표정이었다. 리드 상황에서도 한 골 더 넣으려 안간힘 쓰던 모습. 막 리그를 개막한 이 시점에 팀 내 자리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내년 초여름 팀에서 잘려나가지 않기 위해. 먹잇감 찾아 핏대 올리는 데 제3자로서 살기까지 느꼈다.

대개 동작들이 크다. 의사 표현에 적극적이기도 하거니와, 시쳇말로 '센 척'이라 불리는 모션도 잦다. 손흥민이나 구자철이 유럽 무대에서 싸움도 불사했던 것 또한 절대 오버해서가 아니다. 해외 생활을 5년 이상 이어온 이들에겐 몸이 기억하고 반응할 만큼 생존에 대한 집착이 컸을 터다. 팀 내 경쟁이 이런 식으로 외부에 표출된다.

차범근 전 감독(현 FIFA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을 회상하며 털어놓은 구절 역시 이와 통했다. "내가 왜 그렇게 강한 척을 하려고 했는지 참. 그런데 그렇게 안 하면 안 되는 정글이더라고. 사실 본인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는 거지. 경쟁자에 대한 두려움이라든가, 이 세계에서 져 낙오될 것 같은 두려움이라든가. 그래서 더 강한 식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 구도니까".




#3. 설렁설렁 뛰는 한국 선수, 책임은 어디에? 선수 or 지도자 or 시스템?
차범근 축구 대상 출신 모 K리거. 영국 유학 당시 '슈퍼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적잖은 축구인들이 그 이후의 성장세를 아쉬워했다. 이미 초등생 시절 중학생 고학년과도 경쟁이 될 만큼 대단했다던 이 친구가 더 격렬한 환경에 놓였다면 어땠을까. 쏟아내는 힘의 양을 최대로 높여 경쟁하게 했다면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국내 중고교 축구 현장, '특급'이라 불리는 몇몇이 게임을 휘젓는다. 번뜩번뜩 빛난다. 그런데 늘 아우라를 풍기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단내 날 만큼 안 뛰어도 동년배 정도는 쉽게 제압한다. 본인 능력치의 7~80%만 할애해도 골이며 도움이며 독식한다. 그런데 해당 선수를 품은 감독은 제자의 앞날이 어느 정도 내다보인다. 그래서 속이 탄다. "시합 들어가면 에너지를 다 쓰고 나와야 한다고 말은 하는데, 어린 애들이 그걸 다 컨트롤할 수가 있나".

"경쟁의 질이 낮다"는 제보는 숱하다. 한 감독은 지난해 칠레 U-17 월드컵을 다녀온 모 선수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조금 더 배가 고팠으면 좋겠다는 게 본인 생각인데, 선수는 모든 걸 이룬 듯 느긋했단다. 이후 변화가 찾아왔으나, 그렇게 날린 몇 달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어떻게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 뛰어오를 폭이 판이해지는 시기라 더하다. 그럴 때일수록 난이도가 더 높은 단계에 던져놓을 여건만 됐다면.

극도의 경쟁을 끌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선수가 게을러서도, 지도자가 무능해서도 아니다. 프로 진출 시기를 조율할 수 있는 대학은 그 정도가 덜하다 해도, '연(年)'이 아닌 '학교(등급)' 단위를 기준으로 삼는 중고교는 문제가 크다. 일단 입학하면 졸업까지 3년은 묶인다. 해마다 그 궤도에서 이탈할 일도, 반대로 그 단계를 뛰어넘을 일도 없다. 다소 넉넉하고도 여유로운 울타리 안에서 본인의 최대치를 끌어내지 못한 이들이 '고졸 프로 신인'으로 경쟁력 갖추기가 쉬운 일일까(프로 팀 연습 경기 및 R리그에 고교생을 불러 테스트하는 등 변화의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단, 근본적인 틀을 뜯어고쳐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대목).

유럽을 경험한 이들은 "지독한 경쟁으로 120%를 끌어내는 게 현지의 방식"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이 속에서 싸운 선수라면 절벽에서 떨어지더라도,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를 잡고 버틸 힘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경쟁에 내재된 힘을 간파하고, 이를 생활 곳곳에 녹여놓은 결과다.

어느 지도자가 남긴 말도 일리가 있다 싶었다. 바르셀로나와 같은 최상위 클럽들을 가리켜 '축구를 가르치는 일, 그 이상으로 경쟁을 정말 잘 시키는 팀'이란 것.

사진=스포탈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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