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이라는 지옥에서 살아난 두 선수
입력 : 2013.02.1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정지훈 기자= 승부조작이라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난 두 사나이 이정호(32)와 김응진(26, 이상 부산 아이파크)이 다시 한번 축구화를 동여 멨다.

평범한 대회, 평범한 경기. 그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경기였다. 경기 후 거친 숨을 토해내는 그들의 얼굴은 기쁨과 감격에 겨워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축구 선수 이정호(32)와 김응진(26•이상 부산 아이파크)은 계사년 설날, 그라운드에서 다시 태어났다. 부산 아이파크는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컵대회에서 홍콩 올스타와 격돌했다.

경기 후 이정호는 “이젠 딸에게 당당한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김응진은 “앞으로는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지옥의 시작은 2010년 10월 27일 수원전을 약 한달 앞둔 어느 날이었다. 두 선수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동료는 “조폭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 가족이 다 죽는다. 승부 조작을 도와달라”며 막무가내로 돈을 건넸다.

이정호와 김응진은 경기 당일 고민 끝에 최선을 다해 뛰고, 돈은 나중에 돌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경기 후 돈을 돌려줄 수 없었다. 동료가 잠적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폭에게서 협박 받고 있다는 건 승부조작으로 유인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7개월 후 창원 지검에서 승부조작 사건을 본격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정호는 “일이 터지고 나서야 큰 죄를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됐다. 죄책감에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잤다. 매일 쫓기는 기분이었다. 검찰에 자진 신고를 한 뒤에야 비로소 마음도 편해지고 잠도 잘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자진신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프로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축구에 걸었던 일생이 와르르 무너졌다.

승부조작으로 영구 제명된 사람은 58명. 그 중 이정호•김응진처럼 법정에서 무죄가 입증된 사람은 5명뿐이다. 성실하게 자진신고를 했고, 경기 중 오프사이드로 골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이정호가 헤딩으로 상대 골망을 흔드는 등 최선을 다해 뛰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나오자 프로연맹에서도 지난해 11월 징계를 철회했다. 그리고 원 소속팀이던 부산도 둘을 다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들 이외에 홍성요(34•전 부산)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은퇴를 선택했다.

이정호는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4월 첫딸이 태어났다. 아이가 자라 아빠가 승부조작을 했다고 알까 봐 개명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응진은 “힘든 시기였지만 어머니께서 용기를 주셨다. 무죄가 확정되던 날 어머니를 잡고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어머니를 위해 뛰겠다”고 말했다.

둘은 승부조작에 대해 “ 정말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선수가 많다. 승부조작을 가볍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절대로 우리 같은 후배들이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며 몸서리쳤다.

홍콩 올스타와의 경기를 3-1 승리로 이끈 부산의 윤성효 감독은 “두 선수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다”고 평가했다. 가까스로 주홍글씨를 지울 기회를 잡은 둘은 “관중 앞에 선다는 게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인 줄 몰랐다”며 축구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스포탈코리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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