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15년, 선의로 포장된 지옥 길 위에 선 韓영화
입력 : 2015.12.3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전형화 기자]
2015년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
2015년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2015년 한국영화를 돌아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올해 한국영화는 1억 1231만명이 찾아 4년 연속 1억 관객을 넘어섰다. 총 관객은 2억 1637만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영화 개봉편수는 254편으로, 역시 역대 최고였다.

언뜻 최고의 한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지옥문으로 조금씩 더 다가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옥으로 가는 이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한국영화가, 한국영화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탓이다.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는 건 투자배급사가 최근 몇 년 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관객이 늘어나니 너도나도 돈이 되는, 될 것처럼 보이는 영화산업, 그것도 가장 돈이 되는 투자와 배급에 뛰어들었다. 돈놀이와 유통은 언제나 꽃놀이패인 법이니.

투자배급사가 늘어나니 예전이라면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을 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제작 영화 편수는 껑충 뛰었지만, 다양한 영화나 새로운 영화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너도나도 돈 될 영화만 쫓는 탓이다. 판에 박은 듯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영화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는 10억원 가까이 껑충 뛰었다.

2013년 57.4억원(순제작비+마케팅비)이었던 평균제작비는 2014년 59억원이었던 데 비해 2015년에는 대략 6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15년 4대 투자배급사 영화, 표준계약서가 도입된 촬영현장 평균치다.

올해부터 열악한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4대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표준계약서가 도입됐다. 그 결과 인건비가 크게 오르고, 그 결과 제작비가 크게 올랐다.

제작비는 올랐지만 수익구조는 그대로니 제작사들은 큰 위기에 빠졌다.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화제작가협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차례 모임을 가졌다. 고양이 목 방울 달기처럼 공염불에 그쳤다.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극장요금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산업은 수입의 90% 가량을 극장에서 얻는다. IPTV 시장이 성장하곤 있지만 과거 비디오 시장을 대체하려면 아직 멀었다. 제작비는 갈수록 오르고 있지만, 들어오는 돈은 뻔하니, 점점 수렁에 빠지고 있다.

사람들은 열악한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는 적극 동의하지만, 극장요금이 오르는 건 크게 꺼린다. 선의에는 동의하지만, 내 돈을 쓰는 건 꺼린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선의로 포장돼 있다.

영화 스태프 인건비는 내년에는 더욱 오를 전망이다. 영화 제작편수가 늘고 있지만, 현장 인력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수요는 많고, 사람은 적으니, 인건비는 당연히 오른다. 인건비가 오르니, 제작비도 오르지만, 들어올 돈은 그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들 출연료도 더욱 오르고 있다. 스타들의 티켓파워가 훨씬 커지고 있는 데다, 만들어지는 영화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출연료가 뛰고 있다. 최근 들어 주연급 배우들은 출연료에, 수입 총지분 중 6~10% 가량을 더 요구하고 있다.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면 관객당 얼마씩을 받던 과거 인센티브 방식 대신 전체 들어오는 돈 중에서 일부분을 가져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총체적인 난국으로 치닫고 있지만, 굴러가는 동안은 굴러간다. 영화 제작편수가 지금처럼 계속 늘어나는 한, 빚으로 빚을 막으며, 굴러는 간다. 그러다가 거품이 꺼지는 순간, 단숨에 지옥으로 던져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정책적으로 개입해야 할 정부는 다른 곳에 열중하고 있다. 극장요금 인상은 큰일 날 일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괜히 나서서 욕 먹을 짓을 할 이유는 없다.

정부는 그 대신, 눈 밖에 난 부산국제영화제를 손보고 있으며, K-필름이라며 해외에 한국영화를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창조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영화 선전광고가, 괜히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고 있는 게 아니다.

극장도 정부가 무섭다. 2009년 극장요금을 무려 8년 만에 인상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으로 조사를 받았었다. 2013년 다시 4년 만에 극장요금을 인상했지만, 인상이란 말 대신 다변화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선의로 포장된 길은, 욕망이라는 램프가 커져 있어, 지옥으로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지옥 문 앞에서 춤판을 벌이고 있다.

관객이, 특히 중장년 관객이 늘고 있는 게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20대 관객은 갈수록 줄어든 반면 중장년 관객이 늘면서 전체 관객이 늘었다. 이 희망은 불면 쉽게 꺼지는 촛불 같다.

중장년 관객이 늘면서 새로운 가치를 담은 영화보다는 갈수록 보수적인 가치를 담은 영화들이 흥행하고 있다. 웃거나 울려서 위로하는, 통쾌한 복수로 대리만족을 주는 영화들이 주로 흥행하고 있다. 만들어지는 영화들도 점점 그런 추세를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중장년 관객은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지갑을 닫는다. 굴러가는 동안은, 굴러가지만, 언제 지갑을 닫을지, 시한폭탄 같다.

2016년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개봉하고, 흥행하고, 망할 것이다. 선의로 포장된 길을, 욕망으로 점철된 길을, 굴러가는 동안은, 굴러가지만, 그 끝은 결코 밝을 것 같진 않다. 최종적이고 불가역한 이 길의 끝이, 다른 곳으로 향하길,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주길 바랄 뿐이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