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인천전용극장의 첫 상영작, ‘엇갈린 운명’
입력 : 2012.03.1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인천] 류청 기자= 축구장을 흔히 극장이라고 부른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상연되기 때문이다. 인천축구전용’극장’이 11일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개관 첫 날부터 17,762명의 관객이 찾아 들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급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경기장에 한 번 놀랐고, 첫 상영작의 작품성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날 상영된 작품의 이름은 ‘엇갈린 운명’이었고, 주연은 김남일과 라돈치치였다.

이날 경기장은 휘슬이 울리기 전부터 달아올랐다. 인천팬들은 새 경기장에 벌어지는 첫 경기에 승리를 원했고, 수원팬들은 반대쪽 스탠드를 차지하고 크게 구호를 외쳤다. 수원팬들은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가 일본과 러시아를 거쳐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김남일의 이름을 연호했다. 응원구호가 아닌 성토였다. “배신하는 김남일”이라는 구호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경기가 시작하자 다른 주인공이 등장했다. 2005년 인천에 입단했다가 성남 일화를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수원 삼성에 입단한 라돈치치였다. 라돈치치는 수원 공격 선봉에 서서 친정팀 골문을 노렸고, 전반 29분 골을 터뜨렸다. 오범석의 크로스를 왼발로 가볍게 방향을 바꿔 놓으며 골망을 갈랐다. 이번에는 인천 서포터들이 들끓었다.

라돈치치가 달궈놓은 분위기는 후반 시작과 함께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올랐다. 김남일이 경기장에 들어오자 수원 서포터가 불을 뿜었다. 수원팬들은 “배신! 배신! 김남일!”을 크게 외쳤다. 물론 백전노장 김남일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랑블루가 앉아 있는 골대로 공을 몰았다. 옛 후배들과의 몸싸움도 불사했다.

후반 33분에는 양쪽 팬들이 모두 함성을 질렀다. 같은 소리였지만 종류는 달랐다. 수원팬들은 라돈치치의 페널티킥 추가골에 환호성을 질렀고, 인천팬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한 때는 인천 유니폼을 입고 상대의 골망에 공을 차넣던 라돈치치가 인천팬들 바로 앞에서 자신들의 골대에 공을 꽂아 넣는 것을 보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는 수원의 승리로 끝났지만, 영화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김남일은 자신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수원팬들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라돈치치는 행동이 아닌 말로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다. 그는 특별한 세레모니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나는 인천에서 시작했다”라며 “골을 넣었지만 복잡한 기분이다. 인천은 나의 세컨드 홈”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이야기는 기억을 더 오래 숨쉬게 한다. 인천축구전용구장 개막의 뜨거움은 조금씩 잊혀지겠지만,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 이야기는 쉽게 바래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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