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토크] <55> 머릿속에 축구밖에 없는 남자 하석주를 만나다
입력 : 2013.09.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정성래 기자=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피부는 푸석푸석했다. 인터뷰 전날이었던 지난 8월 25일 K리그 클래식 ‘제철가 더비’서 얼마 전까지 전남 드래곤즈 소속이던 신영준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상위 스플릿 리그 진출이 무산된 전남의 하석주 감독의 모습이 그랬다. 그러나 그는 진정 한국 축구를 걱정하는 ‘머릿속에 축구밖에 없는 남자’였다. 목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전남 그리고 한국 축구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포항과의 경기 소감은?
잠 한숨도 못 잤다. 그렇게 경기하고 잠이 오겠습니까(웃음). 항상 이야기하지만 선수들이 경기 운영이 떨어지는 부문이 있다. 누누이 이야기하는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경기를 많이 뛰어보지 않은 젊은 선수들의 페이스 조절이 문제가 있다. 특히 상위 팀과의 경기에서 그렇다. 의욕이 앞서다 보니 후반 체력저하로 실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울산, 서울, 포항과의 경기서 아쉽게 졌다. 당장보다 미래를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단계다.

신영준에게 결승골을 허용했는데?
트레이드라는 것이 취약 포지션을 보강해야 한다. 자기 팀에서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은 내주는 일이 없다. 선수 수급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느 구단이나 그런 상황이다. 조금 손해 보는 경우도 있다. 신영준 선수가 포항 가서 교체 뛰다가 우리에게 득점을 했다. 그런 경우가 있다. 친정팀을 상대로 정신적으로 더 강해진다. 때문에 감독들이 트레이드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포항은 원체 좋은 미드필더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신영준이 거기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서워서 트레이드 하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남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내 소신껏 밀고 나가야 한다.

목소리기 많이 잠겼다.
솔직히 이기고 싶었다. 1위 팀을 이긴다는 것은 이슈가 되는 일이다. 우리 선수들이 부족함이 있지만 나아가면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것이, 중간 중간에 잡아주는 선수들이 없다는 것이다. 겨울부터 선수 보강을 위해 힘을 썼지만, 모기업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어떻게 보면 시민구단과 별다를 것 없는 상태가 됐다. 용병도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보다는 방출하게 됐다. 선수단 인원도 줄었다. 경험 있는 선수들 영입이 필요했지만 몸값이 비싸고, 다른 팀 또한 클래식 잔류를 위해 선수를 팔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진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했는데 한번에 되어 버렸고, 고액 연봉자 방출이 이뤄지며 이렇게 됐다. 현재까지의 전남은 이런 것이 조금 아쉽다. 즉시 전력감인 선수의 군복무 복귀도 없는 것이 아쉽다

예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달라.
예전에는 약 230억에서 240억원 정도 썼다고 했다. 기업구단과 경쟁이 됐다. 외부에서 왜 좋은 용병, 국가대표 선수 데려오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럴 수 없고, 유소년을 키워 써야 한다. 하지만 유소년 선수들의 발전이 예전같이 않은 것도 안타깝다. 이종호, 김영욱 이후로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투자를 많이 하다 투자가 줄어들면서, 선수들의 수준이 조금은 떨어졌다. 프로에서 군침을 삼킬만한 선수가 없다.
예전에는 포항, 전남 등 유소년 시스템 있는 팀들이 많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있기 때문에 선수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 모든 구단들이 예산이 줄어들 것이다. 유소년을 키우는 데 모두들 사활을 걸고 있다. 좋은 선수를 데려와 키워야 가능성이 생기는데, 스카우트에도 어려움이 있다. 좀 더 멀리 내다본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포항과 달리 전남은 대표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작년에 아쉬워 보강을 해야 하는데 예산이 오히려 줄어 보강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것도 감독이 짊어지고 가야 할 부분이다. 확실히 선수들은 몸값을 한다.

스스로 원하는 축구를 전남에서 어느 정도 완성했는지?
내가 추구하는 축구의 50%만 이뤄졌다. 실제로 감독이 바뀌면 5-6명 보강이 되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입장이 되지 못했다. 경험 있는 선수의 보강도 없었다. 예산 문제 때문에 찾을 수 있는 선수들은 싸고 어린 선수들이다. 고참과의 신구 조화가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전임 사장님이 “예산이 없는데 이 안에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느 팀하고 붙어도 쉽게 지지 않는 끈끈한 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수들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경기 운영의 묘가 아쉽다. 경기를 치르며 경험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위 스플릿 리그에 있다면 결과를 내는 것과 자신의 색깔을 내는 것에 대한 괴리감이 있을 것 같다.
스포츠엔 우승 아니면 없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우리 상황이 어려워도 나는 항상 우승을 하고 싶다. 승강제가 없다면 젊은 선수들 위주로 기회를 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 것이 안타깝다. 또한 감독들이 모험을 하기 쉽지 않는 상황이다. 하위 팀과 승점 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 아주 살벌한 경기가 될 것이다. 스플릿 이전 승점을 최대한 많이 쌓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이 조금 아쉽다. 지금은 전남이 리빌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작년도 두 경기 남겨두고 잔류를 확정 지었다. 상대팀들이 우리를 굉장히 이기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어리기 때문이다.

강등권 싸움, 밖에서 보면 흥미롭지만 지도자 입장에서는 어떤지?
이렇기 어렵고 힘든 것을 아는 사람들이 없다. 감독을 감독이라 할 수가 없다. 웃음이 없어졌다. 사람들도 못 만나고 모두 올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아는 사람들이 없다. 다른 이들보다 연봉을 조금 더 받지만, 이곳은 정년 보장이 되어있는 곳이 아니다.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직업이고, 승강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기자 분들도 하위 스플릿 떨어진 팀들에 관심을 잘 가져주지 않는다. 시즌 초 강원, 대전, 전남, 경남, 대구 이렇게 다섯 팀이 강등 예상권에 들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현실은 받아들여야 했다. 7위권 싸움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더 준비를 잘 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제주나 성남 같은 팀들은 7위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팀들은 충격이 클 것이다. 그러나 모든 팀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을지 몰라도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만의 경기밖에 되지 않는 현실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관중이 많고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모든 언론의 관심이 우승권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축구를 좀 안다 하는 사람도 강등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내년에는 전남의 경쟁력이 좀 더 나아질까?
올해보단 내년이 조금 더 나을 것이다. 분명히 보강을 해야 할 부문은 해야 한다. 올해는 2.5팀이 강등되면 내년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남은 팀들끼리 또다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결국 예산이 부족한 팀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선수들이 한 살 더 먹었다는 것, 조직력이 조금 더 갖춰졌다는 것, 여기에 운이 조금 도와주면 성적이 더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치열할 것이기 때문이다.



표정에서 힘든 게 느껴진다.
모든 감독들이 다 그렇다. 외국 사례를 보자. 감바 오사카가 우승하고 강등됐다. 우리도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린 나라는 팀이 너무 줄어들었다. 12팀은 너무 적다. N리그도 애매하다. 자생 능력이 있는 팀을 추려 최소 14개 팀을 1부로 만들어야 한다.
시민구단의 운영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내년 예산을 미리 쓰는 경우가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우승권은 우승 경쟁, 중위권 팀들과 하위권 팀들이 서로 경쟁하며 떨어지고 올라오고, 외국에선 이런 것들이 일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2부 떨어지면 팀이 해체된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기업이 운영하는 팀이 경기가 좋으면 문제가 없다. 나도 대우라는 팀에 있다가 그 팀이 없어졌다. 스포츠 팀들을 대기업이 운영을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외국의 사례를 본다면, 인구 10만 명, 20만 명 되는 도시에서도 관중이 1만 명 가까이 들어온다. 프로와 지자체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간의 연계도 활성화해야 한다. 한번에 100억원씩 스폰서를 해 줄 기업은 많지 않다. 지역 기반의 중견 기업들에게 조금씩 스폰서를 충당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시민구단 같은 경우에는 팬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시민들이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아 팀을 지원하는 등의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팀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프로팀에 애착이 가고, 이 팀이 우리 팀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성적이 좋지 않아도 관중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경품, 혹은 유명한 선수들이 있어야 경기장에 찾아온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관중이 줄기도 한다. 외국은 2부에서 꼴찌를 하더라도 관중이 항상 찬다. 우리 팀이라는 마인드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나라는 이런 것이 아쉽다.
다들 2부 떨어지는 것을 해체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2부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된다. 떨어지면 더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한다. 올라오게 만들면 된다. 떨어지지 않으려 무리하게 투자하고 감독을 바꾸고, 이런 것들 굉장히 안타까운 현실이다.

외국의 사례, 한국에 정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첫 번째는 프로 축구의 출범이 지역 연고제로 시작하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2002년이나 1998년 월드컵 끝난 후 축구 붐이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하지 못한 것이다. 선수들이 시민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했다. 이제야 프로 팀들이 지역 학교 등을 돌며 급식, 팬사인회 등을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하는 것은 노력하는 것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행사 있으면 나는 무조건 보내준다. 운동이 중요한 게 아니다. 관중이 없으면 프로는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팬이라도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축구가 처음 뿌리를 잘못 내린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성남의 행보를 보면 K리그가 위기인 것 같다.
프로축구, 위기다 위기다 한다. 당장 성남이 그렇다. 기업에서 손을 떼면 방법이 없다. 지자체의 인수 금액이 얼마 정도라고 언론에 나오는데, 그 돈으로는 1년 2년 선수 연봉 주면 끝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시민주 공모 등의 방법을 통해 자금을 충당 하겠지만… 당장 어려운 구단들이 많다. 성남 같은 구단이 살아 가지고 버텨줘야 한다. IMF때처럼 연쇄적인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축구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염려되는 부문이다.
안산에서마저 손을 때면 결국 해체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경험한 당사자다. 일본 갔다 오니까 팀이 없어졌다. 대우가 지금까지 있었으면 수원, 전북, 울산 등 많은 팀들과 좋은 경기를 치렀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더 가슴이 아프다. 한국 축구가 뿌리째 흔들리면 안 된다. 프로가 있기에 대표팀이 있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성남이 이렇게 됐다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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