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Interview] 윤영글, GK 장갑 낀 필드 플레이어
입력 : 2013.09.2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지난해 WK리그 수원시설관리공단(이하 수원FMC)에는 든든한 수비수 윤영글이 있었다. 보는 이들의 마음 속을 뻥 뚫리게 했던 시원한 중거리 슈팅을 자랑했던 윤영글이 올해에는 골키퍼 장갑을 끼고 나섰다.

윤영글이 골키퍼로 포지션을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들은 한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일을 세 번이나 겪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윤영글은 올해 골키퍼 장갑을 낀 것으로 자신의 세 번째 골키퍼 인생을 열었다.

내키기 않았던 포지션, 골키퍼
윤영글은 여주대와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보여준 활약으로 2008년 WK리그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서울시청에 입단했다. 하지만 WK리그가 출범한 2009년 무릎 부상 악화로 두 경기 교체 출전에 그쳤다. “그 때 부상으로 오래 쉬었어요. 아픈걸 참고 뛰다가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됐죠.” 이때까지만 해도 윤영글의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무릎 부상에서 벗어난 윤영글은 그 해 시즌 마지막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그런데 경기에 나선 윤영글은 골키퍼 장갑을 끼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골키퍼를 맡았던 이력을 안 서정호 감독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영글의 마음 속에는 경기에 나섰다는 기쁨보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번듯한 골키퍼가 팀에 있는데 자신이 골키퍼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 때의 골키퍼 출전은 윤영글의 축구 인생을 바꿨다. 2010년 윤영글은 WK리그에서 본격적으로 골키퍼 인생을 시작했다. 서울시청의 전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면서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았다. 골키퍼로 전향한 데에는 지금도 서울시청을 지휘하고 있는 서정호 감독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수술하면서 무릎이 안 좋아졌었어요. 감독님께서 필드 플레이어보다는 골키퍼를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권유하셨어요. 저를 되게 시키고 싶어 하셨어요.”

당시 윤영글은 골키퍼로 나서는 것을 내키지 않아 했다. 자신이 골키퍼로서 준비되어 있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엄청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 골키퍼를 한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주변사람들도 많이 말렸어요.”

결국 골키퍼로 포지션을 바꾼 윤영글은 2010년 내내 주전 골키퍼로 나섰다. 하지만 윤영글의 마음은 여전히 그라운드를 내달리고 있었다. 결국 윤영글은 2011년에 다시 미드필더로 돌아갔다. “너무 하기 싫었어요. 시즌 끝나고 감독님께 말씀 드렸죠. 그래서 다음 시즌엔 다시 필드에서 뛰게 됐어요.”

다시 끼게 된 골키퍼 장갑
2011년 미드필더로 복귀한 윤영글은 전 경기에 나섰다. 그리웠던 그라운드를 기세 좋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골도 여러 차례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수원FMC로 팀을 옮겼고, 21경기 중 18경기에 나섰다. 수원FMC에서는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를 오가며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겨우 골키퍼에서 벗어났지만 윤영글과 골키퍼 사이에는 운명적인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자 윤영글은 다시 골키퍼로 돌아가게 되었다. 수원FMC의 골키퍼를 맡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잘 뛰고 있었는데 시즌이 끝나고 이성균 감독님께서 골키퍼를 시키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그 때 골키퍼가 두 명이었는데 한 선수는 그만 두게 되었고 또 다른 선수는 계약이 끝났어요. 결국 기존에 있던 골키퍼들은 다 나갔고 골키퍼 경험이 있던 제가 장갑을 끼게 된 거죠.”

하지만 지금의 윤영글은 골키퍼를 하기 싫어했던 과거와 달랐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제가 골키퍼를 하고 싶어서 하게 되었어요. 또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되니까, 오랫동안 축구를 하려면 골키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윤영글은 이젠 골키퍼로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있다. “제가 부족한 부분들이 있죠. 그런 부분을 극복하려고 하는데 이미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마음대로 안돼서 코치님께 혼나기도 해요(웃음).”

골키퍼 윤영글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수원FMC의 곽상득 골키퍼 코치다. 윤영글은 올해 목표를 0점대 실점으로 잡았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실점이 많았다. 5월 15일까지 9경기에 나서 13실점을 했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법도 했지만 곽상득 코치의 조언에 윤영글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코치님께서 항상 이렇게 말씀해주셔요. ‘한 경기에 실점 하나만 해도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요. 제가 오늘 0실점 할거라고 하면 코치님은 ‘0실점하려고 하면 너도 모르게 긴장하고 부담을 갖게 된다. 마음을 편히 해라. 한 골만 먹어도 경기는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요.”

많은 부담을 지고 있을 윤영글에게 곽상득 코치는 힘이 되었다. “이번에 전북KSPO를 상대로 4-1로 이겼을 때 경기 끝나니까 ‘거봐 한 골만 먹어도 이기잖아’라고 하셨어요. 항상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많이 의지가 되요.”



팀 해체 위기, 절박함을 안고 뛰다
사실 윤영글을 비롯한 수원FMC 선수들의 마음 한 켠은 무겁다. 수원FMC는 현재 언제든지 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수원FMC를 운영하는 수원시는 해체를 통보했다. 팀이 해체 위기에 놓이자 선수들의 사기도 뚝 떨어졌다. “분위기가 많이 침체 되었었죠. 휴가 기간이어서 중간에 잠깐 팀에 들어와 훈련을 하는데, 분위기가 많이 쳐져 있었어요.”

특히 윤영글은 이적하고 이제 막 한 시즌을 마무리 하자 마자 그런 일이 일어났기에 남들보다 더욱 심란했을 법 했다. 하지만 그녀는 ‘쿨’했다. “해체 기사가 나는 걸 봐도 큰 걱정은 안 했어요. 해체가 그리 쉽게 되겠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수원FMC 해체는 보류됐다. 축구팬들의 해체 반대 청원이 이어지면서 여론이 수원FMC를 도왔고 이것이 수원시 측의 해체 보류 결정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취소’가 아닌 ‘보류’인 만큼 이번 시즌의 성적이 상당히 중요하다. 윤영글은 희망적이었다. “이제 상황이 많이 좋아졌어요. 저희가 올해 성적을 내야죠. 지금 4위니까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미안한 게 많은 골키퍼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어요.” 경기에 나설 때 어떤 기분이 드냐는 질문에 대한 윤영글의 답이다. 어리둥절했지만 대답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올해 신인 선수로 팀에 들어온 후배 골키퍼 전하늘도 미안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하늘이가 골키퍼를 잘해요. 훈련할 때 보면, 제가 봐도 저보다 잘해요. 그런데 경기는 제가 뛰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미안한 감정이 먼저 들죠."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선수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은 같았다. “경기에 안 뛰는 선수들이 있잖아요? 그 선수들을 보면 또 미안해져요. 저도 필드 플레이어 때 경기에 나서지 못해봐서 그 느낌을 알거든요. 그래서 경기에 나서면 미안한 생각밖에 안 들어요.” 하지만 윤영글은 마냥 미안한 감정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미안하기에 그라운드에서 더욱 잘해야 한다는 각오가 생긴 것이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가 서울시청에 있을 때 20실점 이하를 목표로 삼았어요. 아마 그 이상으로 골을 먹었을 거에요. (웃음) 그땐 제 실수로 실점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내 실수로만 실점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실수로 실점하게 되면 필드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힘들지 제가 알잖아요. 제가 허무하게 실점 해버리면 필드 플레이어들이 어떤 마음이 드는지 아니까. 절대 실점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갖고 경기에 들어가요.”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필드 플레이어와 골키퍼 모두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경험했기에 ‘미안한 게 많은’ 골키퍼 윤영글이다.


인터뷰=왕찬욱 기자
사진=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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