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요즘엔 귀성객들로 인한 이동의 불편으로 명절 때의 경기를 피하지만 예전에는 오히려 명절 때 경기를 해 선수들은 휴가를 꿈도 꾸지 못했다. 특히 가을 정기전을 갖는 고려대와 연세대 선수들의 한가위 휴가는 아예 없다시피 했다.
흥청거리는 명절 때 숙소에서 있으려면 더욱 무료할 수밖에 없다. 몇몇은 술을 한잔하거나 화투놀이로 무료함을 달랬다. 연세대 숙소에는 독특한 놀이문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빠꾸타임’이다.
평소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율 속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에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선.후배의 입장을 바꿔보는 놀이다. 해병대 문화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빠꾸타임’은 주로 회식 때 기분 좋을 만큼 술기운이 올랐을 때 선배가 걸게 된다.
간혹 ‘빠꾸타임’으로 인해 선배가 열을 받아 나중에 후배에게 보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빠꾸타임’이 해제되는 순간 그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웃음 속에 묻히게 된다.
1976년 한가위를 앞두고 연세대 3학년이던 강창근이 ‘빠꾸타임’을 걸었다. 강창근의 동기는 조광래 허정무 신우성 이강민 등으로 4학년에 김희태가 있었지만 잦은 국가대표선수 차출로 숙소에서는 강창근이 최고참 노릇을 했다. 또 1학년에는 이장수 오세권 등이 있었는데 항상 화제의 중심에는 이장수가 빠지지 않았다.
GK 강창근은 강원도 출신으로 190㎝가 넘는 거구에 축구화를 맞춰 신을 정도로 발이 컸다. 그러나 순수한 성격에 마음씨 착한 강창근은 술이 한잔 들어가면 평소와는 다른 재미있는 모습으로 후배들 가까이 다가갔다.
연세대 숙소 무악사는 2층 양옥과 단층의 적산가옥으로 이뤄졌는데 단층 적산가옥이 축구부 단독 숙소로 이용됐다. 현관을 들어서면 널찍한 마루 거실이 있고 오른쪽에 큰방이 있다. 여름에는 거실이 집합장소가 되지만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TV가 있는 큰방이 사랑방 구실을 했다. 큰방에서 후배들과 한잔하던 강창근은 기분이 좋았던지 ‘빠꾸타임’을 걸었다.
3학년 강창근이 ‘빠꾸타임’을 선언함으로써 신바람 난 것은 ‘신촌의 밤안개’로 유명한 1학년 이장수였다. 1학년에는 이장수 오세권 외에도 몇 명 더 있지만 ‘빠꾸타임’의 대권은 언제나 이장수 몫이었다.
3학년에는 강창근을 비롯해 신우성 이강민 조광래 허정무 등이 있었으나 조광래 허정무는 대표팀 훈련으로 숙소에 없었다. 4학년 김희태가 최고참이었으나 그도 이 같은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맥주를 마신 터라 얼큰해진 분위기 속에서 대권을 잡은 이장수가 특유의 장난기를 발동했다. 천연덕스럽게 3학년 3명을 큰방에 집합시킨 이장수는 20여명이 보는 자리에서 “소주를 한잔 더 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어때?”라고 말문을 열었다. 강창근 신우성 이강민은 우렁찬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장수는 신우성에게 “야, 우성아 네가 가서 소주 좀 사와”라고 술심부름을 시켰다. 이장수는 첫 ‘빠꾸타임’ 때는 다소 어색해 말도 더듬고 행동도 부자연스러웠으나 한두 번 경험한 뒤에는 ‘빠꾸타임’을 즐길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신우성이 잽싼 동작으로 소주를 사오자 3학년 3명에게 한 병씩 주면서 병째로 마시라고 했다.
이미 맥주를 마셔 취기가 오른 신우성 이강민은 소주병을 입에 댄 채 마시는 척하면서 대부분을 흘렸으나 우직한 강창근은 한 병을 숨도 쉬지 않고 마셔버렸다. 술병이 빈 것을 확인한 이장수는 3명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코를 잡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고 빙글빙글 도는 코끼리 돌리기를 시켰다.
신우성과 이강민은 소주를 마시지 않은 덕분에 조금은 어지럽더라도 잘 돌았지만 덩치가 큰 강창근이 비틀거리며 도는 모습은 마치 코끼리가 묘기를 부리고 있는 듯했다. 1·2학년들의 박장대소 속에 코끼리 돌리기를 하는 3명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고 그럴수록 그들의 모습은 더욱 우스꽝스럽게 변해갔다.
매우 위태로운 모습으로 돌던 강창근이 10바퀴가 넘어서자 갑자기 돌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뭔가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이장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단층 적산가옥의 연세대 축구부 숙소 구조는 현관을 나서면 오른쪽에 간이 샤워시설이 갖춰진 화장실이 있고 왼쪽에는 롤러식 연탄 아궁이와 굴뚝이 있었다. 맥주를 마신데다 소주를 병째로 들이 킨 3학년 강찬근은 코끼리돌기 10바퀴를 하고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한손은 입을 막고 또 한손으로는 뒤를 받쳐 들고는 ‘빠꾸타임’으로 대권을 잡은 1학년 이장수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강창근은 이장수의 “갖다 와도 좋다.”는 이장수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내달렸다.
큰방에서는 ‘빠꾸타임’이 계속됐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큰방 분위기는 강창근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이장수와 오세권은 밖으로 나가 강창근을 찾았다. 화장실을 거쳐 왼쪽으로 가던 두사람은 놀라서 자빠질뻔 했다.
큰 덩치의 강창근이 엉덩이를 깐 채 굴뚝을 안고 뒤로 넘어진 것이었다. 코끼리돌기로 속이 부대끼고 머리가 어지러워진 강창근은 현관을 나서면서 방향감각을 잃고 아궁이 쪽을 화장실로 착각한 것이었다. 한차례 구토를 한 강창근은 큰일까지 치르기 위해 굴뚝을 안고 앉았다가 얼마나 힘을 썼던지 굴뚝을 안고 자기가 싼 것에 주저앉은 것이었다. 강창근은 시원한 기분에 잠이 든듯했다.
‘빠꾸타임’은 그것으로 끝났고 뒤처리는 이장수 오세권 등 1학년 몫이었다. 이들은 우선 강창근을 조심스럽게 샤워실로 옮겨 옷을 모두 벗긴 뒤 말끔히 씻겼다. 그래도 강창근은 나몰라 하고 코를 드르렁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세권은 강창근을 업어 큰방으로 데려간 뒤 옷을 입히고 편안하게 잠 잘 수 있도록 했다.
굴뚝 쓰러진 것은 다시 세우고 아궁이 앞의 오물은 쉽게 치웠지만 오물 범벅이 된 강창근의 옷을 세탁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장수는 강창근에게 소주 병나발을 불게하고 코끼리돌기를 시킨 원죄가 있으니 코를 잡고 냄새나는 옷을 빨 수밖에.
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
흥청거리는 명절 때 숙소에서 있으려면 더욱 무료할 수밖에 없다. 몇몇은 술을 한잔하거나 화투놀이로 무료함을 달랬다. 연세대 숙소에는 독특한 놀이문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빠꾸타임’이다.
평소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율 속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에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선.후배의 입장을 바꿔보는 놀이다. 해병대 문화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빠꾸타임’은 주로 회식 때 기분 좋을 만큼 술기운이 올랐을 때 선배가 걸게 된다.
간혹 ‘빠꾸타임’으로 인해 선배가 열을 받아 나중에 후배에게 보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빠꾸타임’이 해제되는 순간 그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웃음 속에 묻히게 된다.
1976년 한가위를 앞두고 연세대 3학년이던 강창근이 ‘빠꾸타임’을 걸었다. 강창근의 동기는 조광래 허정무 신우성 이강민 등으로 4학년에 김희태가 있었지만 잦은 국가대표선수 차출로 숙소에서는 강창근이 최고참 노릇을 했다. 또 1학년에는 이장수 오세권 등이 있었는데 항상 화제의 중심에는 이장수가 빠지지 않았다.
GK 강창근은 강원도 출신으로 190㎝가 넘는 거구에 축구화를 맞춰 신을 정도로 발이 컸다. 그러나 순수한 성격에 마음씨 착한 강창근은 술이 한잔 들어가면 평소와는 다른 재미있는 모습으로 후배들 가까이 다가갔다.
연세대 숙소 무악사는 2층 양옥과 단층의 적산가옥으로 이뤄졌는데 단층 적산가옥이 축구부 단독 숙소로 이용됐다. 현관을 들어서면 널찍한 마루 거실이 있고 오른쪽에 큰방이 있다. 여름에는 거실이 집합장소가 되지만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TV가 있는 큰방이 사랑방 구실을 했다. 큰방에서 후배들과 한잔하던 강창근은 기분이 좋았던지 ‘빠꾸타임’을 걸었다.
3학년 강창근이 ‘빠꾸타임’을 선언함으로써 신바람 난 것은 ‘신촌의 밤안개’로 유명한 1학년 이장수였다. 1학년에는 이장수 오세권 외에도 몇 명 더 있지만 ‘빠꾸타임’의 대권은 언제나 이장수 몫이었다.
3학년에는 강창근을 비롯해 신우성 이강민 조광래 허정무 등이 있었으나 조광래 허정무는 대표팀 훈련으로 숙소에 없었다. 4학년 김희태가 최고참이었으나 그도 이 같은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맥주를 마신 터라 얼큰해진 분위기 속에서 대권을 잡은 이장수가 특유의 장난기를 발동했다. 천연덕스럽게 3학년 3명을 큰방에 집합시킨 이장수는 20여명이 보는 자리에서 “소주를 한잔 더 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어때?”라고 말문을 열었다. 강창근 신우성 이강민은 우렁찬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장수는 신우성에게 “야, 우성아 네가 가서 소주 좀 사와”라고 술심부름을 시켰다. 이장수는 첫 ‘빠꾸타임’ 때는 다소 어색해 말도 더듬고 행동도 부자연스러웠으나 한두 번 경험한 뒤에는 ‘빠꾸타임’을 즐길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신우성이 잽싼 동작으로 소주를 사오자 3학년 3명에게 한 병씩 주면서 병째로 마시라고 했다.
이미 맥주를 마셔 취기가 오른 신우성 이강민은 소주병을 입에 댄 채 마시는 척하면서 대부분을 흘렸으나 우직한 강창근은 한 병을 숨도 쉬지 않고 마셔버렸다. 술병이 빈 것을 확인한 이장수는 3명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코를 잡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고 빙글빙글 도는 코끼리 돌리기를 시켰다.
신우성과 이강민은 소주를 마시지 않은 덕분에 조금은 어지럽더라도 잘 돌았지만 덩치가 큰 강창근이 비틀거리며 도는 모습은 마치 코끼리가 묘기를 부리고 있는 듯했다. 1·2학년들의 박장대소 속에 코끼리 돌리기를 하는 3명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고 그럴수록 그들의 모습은 더욱 우스꽝스럽게 변해갔다.
매우 위태로운 모습으로 돌던 강창근이 10바퀴가 넘어서자 갑자기 돌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뭔가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이장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단층 적산가옥의 연세대 축구부 숙소 구조는 현관을 나서면 오른쪽에 간이 샤워시설이 갖춰진 화장실이 있고 왼쪽에는 롤러식 연탄 아궁이와 굴뚝이 있었다. 맥주를 마신데다 소주를 병째로 들이 킨 3학년 강찬근은 코끼리돌기 10바퀴를 하고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한손은 입을 막고 또 한손으로는 뒤를 받쳐 들고는 ‘빠꾸타임’으로 대권을 잡은 1학년 이장수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강창근은 이장수의 “갖다 와도 좋다.”는 이장수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내달렸다.
큰방에서는 ‘빠꾸타임’이 계속됐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큰방 분위기는 강창근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이장수와 오세권은 밖으로 나가 강창근을 찾았다. 화장실을 거쳐 왼쪽으로 가던 두사람은 놀라서 자빠질뻔 했다.
큰 덩치의 강창근이 엉덩이를 깐 채 굴뚝을 안고 뒤로 넘어진 것이었다. 코끼리돌기로 속이 부대끼고 머리가 어지러워진 강창근은 현관을 나서면서 방향감각을 잃고 아궁이 쪽을 화장실로 착각한 것이었다. 한차례 구토를 한 강창근은 큰일까지 치르기 위해 굴뚝을 안고 앉았다가 얼마나 힘을 썼던지 굴뚝을 안고 자기가 싼 것에 주저앉은 것이었다. 강창근은 시원한 기분에 잠이 든듯했다.
‘빠꾸타임’은 그것으로 끝났고 뒤처리는 이장수 오세권 등 1학년 몫이었다. 이들은 우선 강창근을 조심스럽게 샤워실로 옮겨 옷을 모두 벗긴 뒤 말끔히 씻겼다. 그래도 강창근은 나몰라 하고 코를 드르렁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세권은 강창근을 업어 큰방으로 데려간 뒤 옷을 입히고 편안하게 잠 잘 수 있도록 했다.
굴뚝 쓰러진 것은 다시 세우고 아궁이 앞의 오물은 쉽게 치웠지만 오물 범벅이 된 강창근의 옷을 세탁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장수는 강창근에게 소주 병나발을 불게하고 코끼리돌기를 시킨 원죄가 있으니 코를 잡고 냄새나는 옷을 빨 수밖에.
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