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포항] 김성진 기자= 포항 스틸러스의 전설적인 외국인 선수 라데 보그다노비치(43)가 17년 만에 다시 포항스틸야드의 푸른 잔디 위에 섰다.
포항은 올해 팀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26일 대구FC와의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를 창단 40주년 기념경기로 정하고, 명예의 전당 헌액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포항 유니폼을 뛰고 활약하며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 받았던 라데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3인 중 1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라데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간 포항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서 맹활약했다. 5년간 147경기에 나서 55골 35도움을 기록했다. 1996년에는 13골 16도움으로 K리그 최초 한 시즌 10골, 10도움을 달성했다. 특히 황선홍 현 포항 감독과의 콤비 플레이는 K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라데는 경기가 열리기 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오랜만에 찾은 포항에 대한 소감 등을 전했다. 그는 “1992년에 왔는데 내게는 큰 도전이었다”며 “포항에서 축구만 한 것이 아니고 인생을 배웠다”고 포항에서 보낸 시간이 자신의 현재 인생을 만든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당시 자신을 지도한 허정무 감독을 비롯해서 이영상, 노태경, 안익수, 홍명보, 황선홍 등 옛 동료들의 이름을 말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한국어로 당시 살던 주소도 말해 좌중을 웃음짓게 했다.
- 오랜만에 온 소감?
엄청난 기분이다. 조금 피곤하다. 26시간 비행해서 어제 새벽에 포항에 도착했다. 포항에 와서 예전에 선수시절 때 살던 아파트에 가고, 예전에 다니던 곳들을 방문했다. 2001년에 베르더 브레멘과 왔지만 하루 만에 왔다가 경기만 하고 갔다. 그때는 팀과 왔고 지금은 예전 추억을 돌이키면서 볼 시간이 많았다.
- 경기장의 어떤 점이 많이 변했나?
경기장은 거의 비슷하고 피치나 라커룸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1992년에도 최고의 축구장이었고 영국 어느 경기장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다. 포항시는 축구장 빼고는 모든 것이 바뀐 것 같다.
- 본인이 운영하는 풋살 경기장 이름을 포스코 아레나라고 정했다. 선수 시절 동안 포항이라는 팀이 각별한 것 같은데?
4년 전에 운동장을 구입하면서 이름을 정하는데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았다. 포스코 아레나라고 했다. 과거에 내가 가장 좋았을 때를 생각했고, 회사를 갔을 때 예전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정했다.
- 과거에 함께 뛰던 동료들의 소식을 들었나?
예전에 같이 뛰었던 이영상, 노태경, 홍명보, 황선홍 등의 팀 메이트들과 연락을 하지는 않아도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안다. 인터넷이 좋아 검색하고, 한국의 지인들을 통해서도 소식을 듣는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총 8팀에서 뛰었는데 홍명보 감독이 상대했던 수비수 중 최고였다. 이 사람은 은퇴 후에도 크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올림픽에서 굉장히 잘했다. 그 때 생각이 맞았다.
2006년에 황선홍 감독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허정무 감독님이 지도한 전남 드래곤즈가 키프러스에 왔다. 황선홍과 20일 정도 같이 지냈다. 축구를 생각하는 마음가짐 등을 이야기했는데 황선홍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안익수 감독 소식도 들었다. 박경훈 감독도 6개월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 지난해 허정무 감독이 인천 코치를 제의했던 것으로 아는데?
허정무 감독님께서 제의하셨을 때 감사하다고 말했다. 두 가지 이유로 거절했다. 포항에서 태어났던 첫째 딸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아내가 종종 프랑스에 간다. 그래서 남은 두 딸을 챙길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는 인천이 문제가 있다는 루머를 들었다. 문제가 있는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정중히 거절했다.
- 본인 이후에 K리그에 많은 동유럽 선수가 뛰었는데 알고 있는지?
내가 떠난 뒤 온 K리그의 외국인 선수 정보는 챙기지 않았다. 포항 소식만 확인했다. 그러나 라돈치치, 보산치치 같은 선수들이 잘 하는 걸 알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좋은 선수들이 온 것을 안다. 외국인 선수가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나라보다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훈련 스타일, 빠른 축구 등에 적응해야 한다.
- 이싸빅이 데얀이 라데를 뛰어넘은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 말했는데 한국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남겼다고 보나?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현재와 20년 전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20년 전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구를 했다.
-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면?
그 당시 축구를 할 때 행복했다. 내가 감성적인 부분이 있었는지 모든 경기에 100%의 힘을 쏟았고, 팬들이 오면 다른 선수보다 더 강력한 골 세레모니를 하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유니폼을 집에 가져가서 직접 빨래를 했다. 그런 환경이었지만 행복했다. 최고의 경기는 1994년과 1996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황선홍과 호흡을 맞췄는데 최고의 컨디션이었고 최문식도 좋은 활약을 했다. 난 포항 최고의 멤버들과 운동을 같이 해서 행복했다.
- 한국에서 축구를 한 것이 자신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고 보나?
1992년에 왔는데 그 해 5월 보스니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고향을 떠나 베오그라드에 있었다. 그 당시 22세였고 세르비아에 남을지 외국으로 나갈 지 고민했다. 그 때 포항에서 제안이 와 왔다. 연습경기를 6번이나 한 뒤 선발됐다. 내게는 큰 도전이었고 연습경기가 끝난 뒤 포항에서 2년 반의 계약을 제안 받았다.
- 포항에 온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이라 볼 수 있을까?
포항에서 축구만 한 것이 아니고 인생을 배운 시간이었다. 4년 반을 생활하면서 일을 어떻게 하고,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 1992년 겨울에 결혼도 했다.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도 당시에는 클럽하우스가 없어 여러 군데를 이동하면서 훈련하고 버스에서 6~7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내심도 배우게 됐다.
- 포항에 살던 곳을 아직 기억하나? 보고 싶은 동료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 6동 303호(한국말로)에 갔다 왔다. 박창현이 가장 보고 싶은데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박창현이 가르쳐줬기 때문인 것 같다. (웃음) 공문배는 17년 정도 못 봤고 이영상도 보고 싶다.
- 사람들이 황선홍, 라데 투톱을 많이 기억한다. 자신에게 황선홍이란?
부모님 집에 가면 거실 왼쪽에 큰 사진이 있다. 나와 황선홍이 찍은 사진인데. 동대문운동장에서 유공에 3-1로 승리할 때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 황선홍을 보면 오늘 경기의 행운을 빌겠다. 내가 내일까지 포항에 머물건데 시간이 되면 같이 추억의 장소를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늘 여기에 오기 전에 아내가 황선홍의 아내가 지금까지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 지난해 조카인 요반치치가 성남에 입단했으나 실패했다. 원인이 무엇이라 보는가?
한국과는 다른 스타일의 선수다. 본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고 한다. 3개월간 성남에 있다 중국으로 갔는데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선수에게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짧은 시간이라고 본다.
- 고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직접 본 적은 없다. 1992년에 왔을 때 박태준 회장님이 일본으로 가셨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그 뒤 내가 포항을 떠난 뒤 그 분께서 한국으로 오셨다. 포스코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영상을 봤지만 아쉽게 만난 적이 없다.
- 포항에서 뛸 때 유니폼 상의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복근을 드러내는 세레모니를 했다. 오늘 레전드 매치에서도 할 것인가?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
- 당시 라데의 복근 세레모니를 본 이동국 등 포항 출신의 어린 선수들이 많이 따라 했다. 자신에게 그 세레모니는 어떤 의미인가?
그 당시에 유스팀과 훈련을 많이 했다. 이동국이 브레멘에 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선수들이 감성적인 부분에서 그 세레모니를 보고 느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
포항은 올해 팀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26일 대구FC와의 K리그 클래식 13라운드를 창단 40주년 기념경기로 정하고, 명예의 전당 헌액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포항 유니폼을 뛰고 활약하며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 받았던 라데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3인 중 1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라데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간 포항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서 맹활약했다. 5년간 147경기에 나서 55골 35도움을 기록했다. 1996년에는 13골 16도움으로 K리그 최초 한 시즌 10골, 10도움을 달성했다. 특히 황선홍 현 포항 감독과의 콤비 플레이는 K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했다.
라데는 경기가 열리기 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오랜만에 찾은 포항에 대한 소감 등을 전했다. 그는 “1992년에 왔는데 내게는 큰 도전이었다”며 “포항에서 축구만 한 것이 아니고 인생을 배웠다”고 포항에서 보낸 시간이 자신의 현재 인생을 만든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당시 자신을 지도한 허정무 감독을 비롯해서 이영상, 노태경, 안익수, 홍명보, 황선홍 등 옛 동료들의 이름을 말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한국어로 당시 살던 주소도 말해 좌중을 웃음짓게 했다.
- 오랜만에 온 소감?
엄청난 기분이다. 조금 피곤하다. 26시간 비행해서 어제 새벽에 포항에 도착했다. 포항에 와서 예전에 선수시절 때 살던 아파트에 가고, 예전에 다니던 곳들을 방문했다. 2001년에 베르더 브레멘과 왔지만 하루 만에 왔다가 경기만 하고 갔다. 그때는 팀과 왔고 지금은 예전 추억을 돌이키면서 볼 시간이 많았다.
- 경기장의 어떤 점이 많이 변했나?
경기장은 거의 비슷하고 피치나 라커룸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1992년에도 최고의 축구장이었고 영국 어느 경기장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다. 포항시는 축구장 빼고는 모든 것이 바뀐 것 같다.
- 본인이 운영하는 풋살 경기장 이름을 포스코 아레나라고 정했다. 선수 시절 동안 포항이라는 팀이 각별한 것 같은데?
4년 전에 운동장을 구입하면서 이름을 정하는데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았다. 포스코 아레나라고 했다. 과거에 내가 가장 좋았을 때를 생각했고, 회사를 갔을 때 예전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정했다.
- 과거에 함께 뛰던 동료들의 소식을 들었나?
예전에 같이 뛰었던 이영상, 노태경, 홍명보, 황선홍 등의 팀 메이트들과 연락을 하지는 않아도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안다. 인터넷이 좋아 검색하고, 한국의 지인들을 통해서도 소식을 듣는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총 8팀에서 뛰었는데 홍명보 감독이 상대했던 수비수 중 최고였다. 이 사람은 은퇴 후에도 크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올림픽에서 굉장히 잘했다. 그 때 생각이 맞았다.
2006년에 황선홍 감독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허정무 감독님이 지도한 전남 드래곤즈가 키프러스에 왔다. 황선홍과 20일 정도 같이 지냈다. 축구를 생각하는 마음가짐 등을 이야기했는데 황선홍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안익수 감독 소식도 들었다. 박경훈 감독도 6개월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 지난해 허정무 감독이 인천 코치를 제의했던 것으로 아는데?
허정무 감독님께서 제의하셨을 때 감사하다고 말했다. 두 가지 이유로 거절했다. 포항에서 태어났던 첫째 딸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아내가 종종 프랑스에 간다. 그래서 남은 두 딸을 챙길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는 인천이 문제가 있다는 루머를 들었다. 문제가 있는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정중히 거절했다.
- 본인 이후에 K리그에 많은 동유럽 선수가 뛰었는데 알고 있는지?
내가 떠난 뒤 온 K리그의 외국인 선수 정보는 챙기지 않았다. 포항 소식만 확인했다. 그러나 라돈치치, 보산치치 같은 선수들이 잘 하는 걸 알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좋은 선수들이 온 것을 안다. 외국인 선수가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나라보다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훈련 스타일, 빠른 축구 등에 적응해야 한다.
- 이싸빅이 데얀이 라데를 뛰어넘은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 말했는데 한국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남겼다고 보나?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현재와 20년 전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20년 전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구를 했다.
-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면?
그 당시 축구를 할 때 행복했다. 내가 감성적인 부분이 있었는지 모든 경기에 100%의 힘을 쏟았고, 팬들이 오면 다른 선수보다 더 강력한 골 세레모니를 하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유니폼을 집에 가져가서 직접 빨래를 했다. 그런 환경이었지만 행복했다. 최고의 경기는 1994년과 1996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황선홍과 호흡을 맞췄는데 최고의 컨디션이었고 최문식도 좋은 활약을 했다. 난 포항 최고의 멤버들과 운동을 같이 해서 행복했다.
- 한국에서 축구를 한 것이 자신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고 보나?
1992년에 왔는데 그 해 5월 보스니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고향을 떠나 베오그라드에 있었다. 그 당시 22세였고 세르비아에 남을지 외국으로 나갈 지 고민했다. 그 때 포항에서 제안이 와 왔다. 연습경기를 6번이나 한 뒤 선발됐다. 내게는 큰 도전이었고 연습경기가 끝난 뒤 포항에서 2년 반의 계약을 제안 받았다.
- 포항에 온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이라 볼 수 있을까?
포항에서 축구만 한 것이 아니고 인생을 배운 시간이었다. 4년 반을 생활하면서 일을 어떻게 하고,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 1992년 겨울에 결혼도 했다.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도 당시에는 클럽하우스가 없어 여러 군데를 이동하면서 훈련하고 버스에서 6~7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내심도 배우게 됐다.
- 포항에 살던 곳을 아직 기억하나? 보고 싶은 동료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 6동 303호(한국말로)에 갔다 왔다. 박창현이 가장 보고 싶은데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박창현이 가르쳐줬기 때문인 것 같다. (웃음) 공문배는 17년 정도 못 봤고 이영상도 보고 싶다.
- 사람들이 황선홍, 라데 투톱을 많이 기억한다. 자신에게 황선홍이란?
부모님 집에 가면 거실 왼쪽에 큰 사진이 있다. 나와 황선홍이 찍은 사진인데. 동대문운동장에서 유공에 3-1로 승리할 때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 황선홍을 보면 오늘 경기의 행운을 빌겠다. 내가 내일까지 포항에 머물건데 시간이 되면 같이 추억의 장소를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늘 여기에 오기 전에 아내가 황선홍의 아내가 지금까지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 지난해 조카인 요반치치가 성남에 입단했으나 실패했다. 원인이 무엇이라 보는가?
한국과는 다른 스타일의 선수다. 본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고 한다. 3개월간 성남에 있다 중국으로 갔는데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선수에게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짧은 시간이라고 본다.
- 고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직접 본 적은 없다. 1992년에 왔을 때 박태준 회장님이 일본으로 가셨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그 뒤 내가 포항을 떠난 뒤 그 분께서 한국으로 오셨다. 포스코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영상을 봤지만 아쉽게 만난 적이 없다.
- 포항에서 뛸 때 유니폼 상의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복근을 드러내는 세레모니를 했다. 오늘 레전드 매치에서도 할 것인가?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
- 당시 라데의 복근 세레모니를 본 이동국 등 포항 출신의 어린 선수들이 많이 따라 했다. 자신에게 그 세레모니는 어떤 의미인가?
그 당시에 유스팀과 훈련을 많이 했다. 이동국이 브레멘에 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선수들이 감성적인 부분에서 그 세레모니를 보고 느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