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퍼거슨이 '벤자민 버튼'이 아닌 게 문제
입력 : 2012.05.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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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잘생긴 영국인 장교 로렌스가 낙타를 타고 멋지게 아라비아 사막을 누빈다. 귀티 나는 만수르가 만능 신용카드를 긁어대시며 영국 축구장을 휘젓는다. 전자는 영화, 후자는 현실이다. 소지섭이 피 철철 흘리며 외치지 않았나. 영화는 영화라고.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우승을 차지했다.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태클을 피하면서 슈팅을 위한 최적 지점에 볼을 갖다 놓는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터치는 축구 테크닉의 정수였다. ‘신의 터치’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축구의 신이 26년 전 그의 장인 손을 도왔던 실수를 만회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 선수들이 모인 팀이 챔피언이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잉글랜드 축구 팬들이여, 아부 다비 가문을 찬양하라. 현대축구의 가네샤(Ganesha; 지혜와 재산을 관장하는 인도의 신)가 계시기에 아구에로가 그대 앞에서 뛰고 있나니.

아쉽게도 알렉스 퍼거슨에겐 가네샤가 없다. 대신 부자 인간들이 모인 가족이 있다. 꾼 돈으로 구단을 돌리곤 있지만, 글레이저 가문도 섭섭하지 않게 퍼거슨을 지원한다. 나니, 안데르송 그리고 오언 하그리브스(당시 그는 최고였다)를 사줬고, 탄탄한 스쿼드를 바탕으로 팀은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8, 2009, 2011년 세 번이나 결승전에 올랐다. 구단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지난해 세대교체가 요구되자 크리스 스몰링, 애슐리 영, 필 존스, 다비드 데헤아를 사줬다. 지금 당장 최고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탐낼 만한 인재들이다. 외제 스포츠카 대신 국산 중형차 사줬다고 떼쓰면 엉덩이에 뿔난다. 아랫집 아스널 학생은 중고차로도 잘만 다닌다.

2011/2012시즌은 퍼거슨에게 너무나 중요했다. 잉글랜드 축구사에 길이 남을 통산 20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노감독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 그 꿈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동 자금이 야반도주만 하지 않는다면 맨시티의 전력 강화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무시무시하다는 뜻이다. 이적시장의 ‘핫 이슈’였던 에당 아자르(릴OSC)도 결국 맨시티 쪽으로 기울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맨시티로 간다 해도 놀랍지 않다. 아부 다비 가문에 세상만사는 ‘생각대로’ 돌아간다. 지금도 객관적 전력에선 맨시티가 앞선다.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맨시티 세상”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 첼시가 이를 몸소 입증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주제 무리뉴가 이끌었던 첼시는 천하무적이었다. 2004/2005시즌 첼시의 우승 승점이 무려 95점이었다. 하지만 첼시 시대는 3년도 채 이어지지 못했다. 사령탑 교체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헤게모니를 맨유에 빼앗겨버렸다. 올 시즌은 아예 4위권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주말 뮌헨에서 이기지 못하면 내년 시즌은 유로파리그에 만족해야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추락이다. 맨시티가 첼시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마크 휴즈 해임으로써 이미 첼시에서 벌어졌던 잦은 사령탑 교체의 징조를 보였다. 맨시티가 삐끗하는 순간, 퍼거슨이 독사처럼 달려들 것이다. 첼시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첼시 때와는 다른 문제가 한 개 있다. 퍼거슨은 벤자민 버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올해로 만 71세다. 그의 시간은 자꾸 줄어든다. 퍼거슨이 조만간 일선에서 물러나리라는 예상은 당연하다. 물론 지금도 정정하다. 그렇지만 70대 중반 이후까지 사이드라인에서 양팔을 휘저으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퍼거슨의 모습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환경 변화도 변수다. 2005년 첼시에 밀리던 퍼거슨은 사퇴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다. 세상 인심은 변덕스럽다. 만약 맨유가 한두 시즌 더 무관에 그친다면 퍼거슨을 향한 세상의 존경심은 금방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70대의 나이, 라이벌의 초강세 그리고 세대교체가 필요한 선수단 상태 등을 감안하면, 지금 맨시티가 퍼거슨 축구 경력에서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퍼거슨은 맨시티의 터무니없는 돈 씀씀이를 비난했다. 아자르 한 명 영입하자고 이적료를 3,500만 파운드씩이나 내질렀다며 쏴댔다. 아부 다비 가문에겐 가득 찬 곳간이 너무 많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파이낸셜 페어 플레이’ 정책을 우회할 방법도 다양하다. 같은 집안 소유인 에티하드항공와의 스폰서십이 단적인 예다. 맨시티는 얼마든지 돈을 쓸 수 있고, 빈 통장을 다시 채울 수 있다. 퍼거슨 입장에선 비난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억울함의 호소에 가깝다. 맨시티는 아자르를 잡았고, 맨시티는 그 정도 지출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전혀 다른 집안과 상대하려니 퍼거슨으로선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퍼거슨의 마지막 도전은 매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기 선수들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팀을 상대해서 이겨야 한다.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 열세를 저력과 뼈대 그리고 꾸준함으로 만회해야 한다. 현 스쿼드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맨시티와 승점 동률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도 바로 맨유와 퍼거슨의 ‘전통’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내년 시즌 우승 확률도 맨시티가 맨유보다 크다. 그러나 휘청거릴 가능성도 맨시티 쪽이 높다. 맨유의 성적 변동 폭은 좁다. 맨시티란 새로운 변수의 등장에 첼시, 아스널, 리버풀은 모두 나가 떨어졌지만 맨유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 모습이 퍼거슨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다.

현실 속 퍼거슨은 자신의 축구 인생 마지막 챕터에서 ‘영화처럼’ 가장 강력한 상대를 만났다. 금발의 미녀 여자친구는 적의 교활한 부하에게 인질로 잡혀있는데다 무기는 고장 나있는 식의 ‘대략난감’ 설정에 걸린 주인공처럼 힘겨워 보인다. 영화라면 퍼거슨이 맨시티를 꺾고 멋지게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면서 위대한 역사를 쓰고 은퇴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현실 속 결말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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