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서울월드컵경기장] 류청 기자= “간판에도 다 모르는 글자 뿐이었다” (몰리나) “내가 6년이나 있을 지 몰랐다” (데얀)
데얀과 몰리나가 기록의 사나이가 됐다.
그들은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울산 현대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39라운드 경기에서 모두 K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몰리나는 도움을 추가하며 K리그 통산 한 시즌 최다 도움(17개) 기록을 갈아 치웠고, 28호골을 터뜨린 데얀은 역대 한 시즌 최다골 기록(김도훈 성남 코치)와 타이를 이뤘다.
숫자와 기록은 차갑지만, 뒤를 들여다보면 따뜻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 선수는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각각 6년(데얀)과 4년(몰리나)을 노력한 끝에 박수를 받게 됐다.
데얀은 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2006년에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에서 임대로 뛰면서 아시아 무대를 경험했지만, K리그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K리그의 외국인 전설이었던 샤샤를 알고 있었고, 제2의 샤샤가 되기 위해 한국에 발을 디뎠다. 물론 그는 “나도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샤샤의 기록은 생각도 못했다”라고 했다.
인천에서, 데얀은 빛났다. 지금과는 달랐다. 데얀은 마무리 능력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로 정평이 났었다. 2008년 서울로 이적해 세뇰 귀네슈 감독을 만난 후에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야 했다. 처음에는 마찰도 있었다. 데얀은 영리했다. 금세 적응했다. 그는 가끔 “나는 말처럼 뛰고 있다”라며 웃는다. 이어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몰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몰리나는 2009년 성남 일화에 입단했다. 2년 6개월 계약이었다. 몰리나는 데얀보다 더 한국을 낯설어 했다. 영어조차 서툴렀다. 몰리나는 “처음에는 모든 게 어려웠다. 간판을 봐도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2년 6개월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어디서든 실력 있고 성실한 선수는 살아남는다. 몰리나를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성실함과 프로 정신에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최용수 감독은 “몰리나는 포인트 머신 같다”라고 했다. “선수 생활 때 봐도 그렇게 골과 도움을 한 번에 많이 올리기가 쉽지 않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두 선수는 모두 자신보다는 팀을 생각한다는 공통점도 지녔다. 15일 경기가 끝나고도 두 선수는 입을 모았다. 데얀은 “골을 넣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만, 우승을 많이 못한 게 아쉽다”라며 “서울과 우승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몰리나도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라며 “우승에 가까이 왔지만, 끝까지 방심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동료들이 이런 선수를 싫어할 리가 없다.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좋은 결과를 낳았다. 두 선수는 이제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게 됐다. ‘제2의 샤샤’가 되길 바랐던 데얀은 우상을 뛰어넘었고, 몰리나는 남미 선수들에게 ‘K리그 드림’을 심어줄 수 있는 선수가 됐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아직 두 선수의 질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순간에도 두 선수는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
데얀과 몰리나가 기록의 사나이가 됐다.
그들은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울산 현대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39라운드 경기에서 모두 K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몰리나는 도움을 추가하며 K리그 통산 한 시즌 최다 도움(17개) 기록을 갈아 치웠고, 28호골을 터뜨린 데얀은 역대 한 시즌 최다골 기록(김도훈 성남 코치)와 타이를 이뤘다.
숫자와 기록은 차갑지만, 뒤를 들여다보면 따뜻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 선수는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각각 6년(데얀)과 4년(몰리나)을 노력한 끝에 박수를 받게 됐다.
데얀은 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2006년에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아흘리에서 임대로 뛰면서 아시아 무대를 경험했지만, K리그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K리그의 외국인 전설이었던 샤샤를 알고 있었고, 제2의 샤샤가 되기 위해 한국에 발을 디뎠다. 물론 그는 “나도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샤샤의 기록은 생각도 못했다”라고 했다.
인천에서, 데얀은 빛났다. 지금과는 달랐다. 데얀은 마무리 능력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로 정평이 났었다. 2008년 서울로 이적해 세뇰 귀네슈 감독을 만난 후에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야 했다. 처음에는 마찰도 있었다. 데얀은 영리했다. 금세 적응했다. 그는 가끔 “나는 말처럼 뛰고 있다”라며 웃는다. 이어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몰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몰리나는 2009년 성남 일화에 입단했다. 2년 6개월 계약이었다. 몰리나는 데얀보다 더 한국을 낯설어 했다. 영어조차 서툴렀다. 몰리나는 “처음에는 모든 게 어려웠다. 간판을 봐도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2년 6개월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어디서든 실력 있고 성실한 선수는 살아남는다. 몰리나를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성실함과 프로 정신에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최용수 감독은 “몰리나는 포인트 머신 같다”라고 했다. “선수 생활 때 봐도 그렇게 골과 도움을 한 번에 많이 올리기가 쉽지 않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두 선수는 모두 자신보다는 팀을 생각한다는 공통점도 지녔다. 15일 경기가 끝나고도 두 선수는 입을 모았다. 데얀은 “골을 넣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만, 우승을 많이 못한 게 아쉽다”라며 “서울과 우승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몰리나도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라며 “우승에 가까이 왔지만, 끝까지 방심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동료들이 이런 선수를 싫어할 리가 없다.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좋은 결과를 낳았다. 두 선수는 이제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게 됐다. ‘제2의 샤샤’가 되길 바랐던 데얀은 우상을 뛰어넘었고, 몰리나는 남미 선수들에게 ‘K리그 드림’을 심어줄 수 있는 선수가 됐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아직 두 선수의 질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순간에도 두 선수는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