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정성래 기자='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에 뿌리내린 K리그가 30주년을 맞이했다.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K리거들이 '축구의 본고장' 유럽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이는 좌절과 실패을 맛보고 돌아왔으며, 어떤 이는 환희와 희망을 노래했다. 최순호·김주성부터 윤석영까지, 유럽 무대로 향했던 K리거에 대해 알아본다.
한국에 프로축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던 차범근과 허정무는 각각 독일의 다름슈타트와 PSV아인트호벤에 입단하며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1983년 슈퍼리그 출범 후, 한동안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시아의 호랑이' 최순호가 1992년 프랑스 르샹피오나 2부의 로데스AF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면서 선수로 활약, K리거의 유럽 진출은 시작됐다. '야생마' 김주성 역시 같은 해 독일의 VfL 보훔으로 이적하여 1994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 대한민국에 프로축구가 창설된 이래 처음으로 해외로 진출한 선수가 나온 것이다.
안양 LG 치타스 소속의 서정원은 1998년 1월 프랑스 르샹피오나의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며 명맥이 끊겼던 K리거의 유럽 진출을 이어나갔다. 그는 스트라스부르를 강등권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감독이 교체되며 전력 외로 분류되었고, 1999년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며 K리그로 복귀했다. 2005년에 해외로 재진출하여 오스트리아의 SV잘츠부르크와 SV리트에서 맹활약하며 오스트리아에서 최고 선수 대접을 받았다.
서정원 이후 안정환이 유럽 진출에 성공하며 유럽에서의 K리거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부산 대우 로얄즈의 안정환은 2000년 7월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에 입단하여 두 시즌 동안 18경기 5골 1도움을 올리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2002 FIFA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었고, 그 이유로 방출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안정환의 진출 이후 이동국과 심재원이 2001년 각각 베르더 브레멘과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들은 부상과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K리그로 복귀한 불운의 주인공들이었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유럽행이 이어졌다. 안양 LG 치타스의 이영표는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에 입단하며 성공적인 유럽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잉글랜드 토트넘 핫스퍼와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을용 역시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하여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송종국과 김남일, 이천수는 유럽 진출 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K리그로 복귀하며 '2002 황금 세대'의 유럽 진출 도전기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이후 김두현과 조원희가 K리그와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각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웨스트 브롬비치 알비온과 위건 애슬레틱으로 이적했지만 부상과 적응 문제로 인해 아쉬움을 남겼다.
현영민과 김동진, 이호는 러시아로 진출하며 K리거 유럽행의 신항로를 개척했다. 특히 김동진과 이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한민국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따라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 2007/2008시즌 팀의 UEFA컵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후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보고 자란 '월드컵 키드'들의 유럽 도전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세계 강호들과 맞서 싸우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본 '월드컵 키드'들은 앞서 유럽에 진출했던 선배들과 달리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하여 성공적인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FC서울에서의 성공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이청용은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선수가 되었고, 기성용은 2010년 셀틱으로 이적하여 좋은 활약을 보이며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에 안착했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구자철과 전남 드래곤즈의 지동원은 K리그, 2011년 아시안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각각 독일 분데스리가의 볼프스부르크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들은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어 맹활약을 펼치며 소속팀의 강등권 탈출에 힘을 더하고 있다.
가장 최근 유럽 무대를 밟은 K리거는 윤석영이다. 하지만 그는 2013년 1월 전남 드래곤즈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했지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한 차례도 뛰지 못하며 강등될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K리거들의 유럽 진출은 빛나는 성공만큼 어두운 실패도 존재한다. 성공한 선수들에게 찬사는 당연하다. 하지만 실패를 맛보고 K리그로 돌아오는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 역시 필요하다. 성공한 선수와 실패한 선수 모두 'K리그'가 키워낸 선수들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진=김재호 기자, ©BPI/스포탈코리아
한국에 프로축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던 차범근과 허정무는 각각 독일의 다름슈타트와 PSV아인트호벤에 입단하며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1983년 슈퍼리그 출범 후, 한동안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시아의 호랑이' 최순호가 1992년 프랑스 르샹피오나 2부의 로데스AF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면서 선수로 활약, K리거의 유럽 진출은 시작됐다. '야생마' 김주성 역시 같은 해 독일의 VfL 보훔으로 이적하여 1994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 대한민국에 프로축구가 창설된 이래 처음으로 해외로 진출한 선수가 나온 것이다.
안양 LG 치타스 소속의 서정원은 1998년 1월 프랑스 르샹피오나의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며 명맥이 끊겼던 K리거의 유럽 진출을 이어나갔다. 그는 스트라스부르를 강등권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감독이 교체되며 전력 외로 분류되었고, 1999년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며 K리그로 복귀했다. 2005년에 해외로 재진출하여 오스트리아의 SV잘츠부르크와 SV리트에서 맹활약하며 오스트리아에서 최고 선수 대접을 받았다.
서정원 이후 안정환이 유럽 진출에 성공하며 유럽에서의 K리거 성공신화를 써내려갔다. 부산 대우 로얄즈의 안정환은 2000년 7월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에 입단하여 두 시즌 동안 18경기 5골 1도움을 올리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2002 FIFA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었고, 그 이유로 방출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안정환의 진출 이후 이동국과 심재원이 2001년 각각 베르더 브레멘과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들은 부상과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K리그로 복귀한 불운의 주인공들이었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유럽행이 이어졌다. 안양 LG 치타스의 이영표는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에 입단하며 성공적인 유럽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잉글랜드 토트넘 핫스퍼와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을용 역시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하여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송종국과 김남일, 이천수는 유럽 진출 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K리그로 복귀하며 '2002 황금 세대'의 유럽 진출 도전기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이후 김두현과 조원희가 K리그와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각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웨스트 브롬비치 알비온과 위건 애슬레틱으로 이적했지만 부상과 적응 문제로 인해 아쉬움을 남겼다.
현영민과 김동진, 이호는 러시아로 진출하며 K리거 유럽행의 신항로를 개척했다. 특히 김동진과 이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한민국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따라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 2007/2008시즌 팀의 UEFA컵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후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보고 자란 '월드컵 키드'들의 유럽 도전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세계 강호들과 맞서 싸우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본 '월드컵 키드'들은 앞서 유럽에 진출했던 선배들과 달리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하여 성공적인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FC서울에서의 성공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이청용은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선수가 되었고, 기성용은 2010년 셀틱으로 이적하여 좋은 활약을 보이며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에 안착했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구자철과 전남 드래곤즈의 지동원은 K리그, 2011년 아시안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각각 독일 분데스리가의 볼프스부르크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들은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어 맹활약을 펼치며 소속팀의 강등권 탈출에 힘을 더하고 있다.
가장 최근 유럽 무대를 밟은 K리거는 윤석영이다. 하지만 그는 2013년 1월 전남 드래곤즈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했지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한 차례도 뛰지 못하며 강등될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K리거들의 유럽 진출은 빛나는 성공만큼 어두운 실패도 존재한다. 성공한 선수들에게 찬사는 당연하다. 하지만 실패를 맛보고 K리그로 돌아오는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 역시 필요하다. 성공한 선수와 실패한 선수 모두 'K리그'가 키워낸 선수들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진=김재호 기자, ©BPI/스포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