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RTALKOREA] 이경헌 기자=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원로 배우 이순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뉴스1, 뉴시스에 따르면 이순재는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1934년 11월 함경북도 회령 태생인 이순재는 지난해부터 건강이 약해진 가운데 병원 치료를 받으며 복귀에 힘썼지만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고령 배우로 활동을 이어오던 고인은 지난해 말부터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다. 그는 연극 활동을 취소하고 안정을 취하며 몸을 회복해왔다. 지난해 10월 건강 문제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출연 중 하차했으며, 올해 8월 이순재 측은 "재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 중"이라며 "재활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작품 활동도 재개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 방송사의 역사, 세대 초월한 국민배우
이순재는 70년간 연기 인생을 이어오며 세대를 넘어 사랑받은 대배우다. 20대부터 90세까지 연기를 놓치지 않고 열정을 불태우면서 동료 선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 청년 세대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은 위로와 조언을 통해 사회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1934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 중국 지린성 옌지로 이주했고 네 살 때부터 서울의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1954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뒤 서울대 연극회 활동을 하며 철학과 재학 시절 연기의 길을 선택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고, 1962년 KBS 첫 TV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에 출연하며 TV 드라마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1964년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본격적인 TV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방송사 HLKZ-TV부터 활동해 온 한국 방송사의 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TV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송출하던 때로, 그는 정확한 발성과 발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연기력을 펼쳤다. 1965년 TBC가 개국과 함께 TBC 전속 탤런트가 됐고, TV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연극 무대를 활발히 오갔다.
'사랑이 뭐길래'부터 '하이킥'까지, 시대마다 전성기
이순재는 1990년대 전국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1991~1992)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할을 맡아 그 시대의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65%를 기록했다. 또 1999년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 역할로 사랑받았으며, '동의보감', '이산', '상도' 등으로 사극 장르에서도 활약했다.
70대에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2006)으로 또 한 번 전성기를 열었다. 중년에 근엄한 인물, 가부장적인 아버지 역할을 맡은 것에 이어 70대 나이에 시트콤에 도전한 것. '하이킥'이 젊은 세대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야동순재' '미스터 순재' 등 극 중 캐릭터로 생긴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어 '지붕 뚫고 하이킥' (2007)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로 남녀노소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하이킥'은 그에게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안겨주었다.
2013년에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 동료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출연했다.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자세로 여행을 즐겼고, 남다른 어학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항상 배우려는 자세와 열정을 보여주며 안방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90세까지 무대 지킨 '대학로의 방탄노년단'
노년에도 이순재는 '세일즈맨의 죽음' '늙은 부부 이야기'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 연극에 출연하며 '대학로의 방탄노년단'으로 불렸다. 많은 동료가 무대를 떠날 때도 이순재는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80대 후반에 연극 '리어왕'에서 장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연극 '갈매기'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구순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건강 악화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중도하차하긴 했지만, 병상에서도 연기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후배들에게 연기 가르치는 일도 각별히 여겼던 그는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도 역임, 최근까지 제자들을 만났다.
생애 첫 단독 대상, 마지막 메시지는 감사
지난해 말 '2024 KBS 연기대상'에선 KBS 2TV 드라마 '개소리'로 대상을 받아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가 됐다. 2024년 드라마 '개소리'의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었던 이순재에게 단독으로 대상을 받은 것은 70년 연기 인생 중 처음이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출연 중 건강 악화로 하차해 회복 중인 가운데, 연기대상 시상식에 선 이순재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라고 말문을 연 뒤, 자신의 연기 인생을 돌아봤다. 또 자신이 교수로 있는 대학교의 학생들이 드라마 '개소리' 촬영 일정을 우선으로 생각해 줬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짓기도 했다. 이어 시청자들을 향해서도 "정말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수상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 전한 마지막 메시지였다.
사진=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