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에닝요 귀화 쟁점은 절차보다 진정성
입력 : 2012.05.1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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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역사상 최초의 귀화 선수를 품으려고 한다. 언제나 ‘최초’는 논란의 중심이다.

대한축구협회가 2012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앞두고 에닝요의 특별귀화를 추진한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후 사실 확인과 찬반 양론으로 여론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귀화 선수 탄생과 이를 위한 행정 절차의 타당성이 주요 쟁점이다.

알다시피 지금까지 축구 국가대표팀이 귀화 선수를 선발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1933년 조선축구협회, 1948년 대한축구협회 발족 이후 기록된 국가대표팀 명단은 모두 순수 한국인의 이름만 있다. 에닝요가 되었든 제3자가 되었든 외국인이 귀화를 통해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다는 일은 당연히 논란거리일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최초, ‘1호’의 탄생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대한축구협회는 이를 위해 ‘특별’이란 단어가 붙는 방법을 선택했다.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는 특별귀화란 제도를 통해 한국인이 된 타 종목 네 명의 선수(문태종, 문태영, 킴벌리 로벌슨, 공샹찡)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에닝요의 특별귀화 추천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국적법 시행령에 따른 ‘중앙행정기관장의 추천’이란 방법으로 우회를 시도하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의견이 나뉠 소지가 뚜렷하다.

쟁점이 두 가지나 되니 일이 복잡하다. 하지만 시선의 폭을 넓히면 한 가지 논란거리는 지울 수 있다. 바로 절차 문제다. 이번 건에 있어서 절차상 논란에 초점을 맞추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업무조율을 위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회할 수밖에 없게 만든 대한축구협회의 일 처리가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그게 에닝요의 귀화를 이야기하는 논점이 되어선 곤란하다. 궁극의 목표는 국가대표팀 전력 강화다. 귀화 선수 발탁이라는 전인미답의 단계로 들어설지 말지가 중요하다. 그를 위한 행정 절차와 관련기관 업무조율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한국 사회가 가진 비효율의 전형이다. 큰 조직을 경험해본 독자라면 이 부분을 절감하리라 생각한다. 조직관리라는 틀 안에 갇혀 폐기처분되는 아이디어가 한둘인가. 배알이 꼴린 반대파는 백이면 백 절차상의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

물론 귀화 대표 선수 한 명 만들자고 법 제도를 초월해선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이 정해놓은 길을 정당하게 밟아야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에닝요의 특별귀화를 위한 합법적 방법이 남아있다. 그 다음은 법무부의 몫이다. 대한축구협회가 때린 슈팅이 골라인 위를 지나고 있다. 골대를 지키고 있던 대한체육회는 ‘노 골’이라고 외쳤다. 볼이 골라인을 완전히 넘어갔는지 아닌지를 이제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일이다. 만약 법무부에서 ‘노 골’을 선언하면 에닝요의 특별귀화는 해프닝으로 끝난다. 절차를 무시한다기보다 ‘간소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위한 논쟁에서 초점이 절차 쪽으로 빠지면 그야말로 에너지 낭비다.

자, 이제 궁극의 쟁점을 살펴보자. 브라질 출신 ‘에 서방’을 우리 식구로 받아들일지 말 지다. 찬성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축구를 잘하니까 귀화시키자는 것이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분도 있겠지만, 좋든 싫든 FIFA월드컵은 한국 사회에서 어마어마한 대사(大事)다. 그 점을 부인할 순 없다. 우리는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매우 강해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가장 높은 곳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앞에서 한국은 흥분하고 감동한다. 바깥 세상에서는 찬밥신세인 올림픽 축구팀조차 한국에선 국민적 관심사로 전폭적 지지를 받는다. 그런 곳에서 국가대표팀 전력 상승에 도움이 되는 우수 인재의 합법적인 귀화라면 당연히 환영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에닝요의 귀화 목적에 의문을 품는다. 한국 축구 발전보다 월드컵 출전 욕심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에닝요가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점이 한국적 정서를 건드린다.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구석이다. 선례로 제시되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귀화 선수들과 에닝요는 분명히 다르다.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라모스나 로페스, 툴리오 등은 모두 귀화 결정 이전부터 일본에서 삶의 터전을 잡은 사회 구성원이었다. 일본어 구사 능력은 물론 직간접으로 일본과 혈연지간이다. 한국인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고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 에닝요라면 귀화 진정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에닝요 귀화 논란의 근본은 ‘최초’에 대한 저항감 또는 거부감이라고 생각한다. 선례 유무가 특정 사안의 판단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에서는 저항감이 더 큰 편이다. 네덜란드 출신 석학 게르트 호프스테드 박사의 문화적 특질 연구에서도 한국인은 불확실성(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히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확실성 거부감’ 항목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서 85점을 받았다. 반면 영국은 35점에 불과했다. 한국 축구사에 있어서 귀화 선수의 국가대표팀 합류만큼이나 큰 변화가 어디 있겠나. 100년이 넘도록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대개의 역사가 그렇듯이 선구자는 후세대가 붙여준 미명일 뿐,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높은 평가보다 호기심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안 가본 골목길도 막상 지나가려면 괜스레 불안해지는 게 사람 심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는 ‘최초의 귀화 국가대표팀 선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당면과제 해결을 위해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라고도 할 수 있다. 최강희 감독은 주위의 부추김에 의해 귀가 팔랑거리는 인물이 절대로 아니다. 그는 “에닝요는 한국 축구의 정서와 희생정신을 잘 알고 있다”고 귀화 추천 이유를 밝혔다. 에닝요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최강희 감독의 말에 동감할 것이다. 에닝요는 이기적이고 게으르다는 브라질 선수들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수원에서 방출되는 아픔도 겪었고, 소속팀 전북 현대의 두터운 스쿼드에서 경쟁하고 양보하고 팀을 위한 마음가짐을 배웠다. 축구선수 자체로 그는 태극 마크의 완벽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만 6년째 에닝요는 뛰어난 기량으로 K리그 발전에 공헌했다. AFC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사견이 될 지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공헌했던 바는 한국어 구사 여부 논란보다 더 커 보인다.

에닝요가 논란을 뚫고 태극 마크를 달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승선하게 되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찌 보면 대표팀 동료들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지만 비로소 대한민국 축구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낳아준 나라에서 개최되는 축구 잔치에 키워준 나라가 참여할 수 있도록 공헌해야 한다. 만약 본선에 나선다면 그 무대에서 태극기를 위해 달려야 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월드컵 그 후에도 대표팀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2015년 호주에서 아시안컵이 개최된다. 만약 에닝요가 그때까지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그라운드에서 고귀한 땀을 흘린다면, 한국 사회는 역사상 최초의 귀화 국가대표팀 축구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줄 것이다.

태극 마크는 보상품이 아니다. 현역 최고의 선수에게 거절 당할 정도로 권위도 예전만 못하다. 지금 에닝요는 그런 태극 마크를 원한다. 가본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길이다. 절차가 아니라 에닝요의 심장 색깔이 태극 마크를 달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뜨겁고 붉은 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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