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의 눈] 왜 화살을 자기 편에 쏘는가
입력 : 2012.06.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2011년 8월 26일, 기자는 인천에서 한 노장 감독이 팬들의 집중포화를 받는 장면을 목도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허정무 전 감독이 자식뻘 되는 팬들에게 부진한 성적, 인천숭의구장 건립건에 대해 해명했다. 허 감독은 뒷짐을 지고 서있고, 팬들은 구단이 마련한 치킨과 맥주를 먹고 마시며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구단 측에서 “토론의 장을 만들자”는 취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룬 지도자는 초라했다. 2010년 대전 시티즌 왕선재 전 감독도 대전 서포터즈들과 격론의 장을 벌였다.

허 감독, 왕 감독 사태를 시작으로 최근 들어 팬들의 입김이 거세졌다.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감독 나와!”를 스스럼없이 외친다. 군 시절 선임병이 입에 달고 살던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6월 21일 FC서울-수원 블루윙즈간 FA컵 16강전에서 서울이 0-2로 패하자 서울 서포터즈가 구단 버스를 가로 막는 초유의 사태가 신호탄이다. 연쇄효과가 일어나 23일 강원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김상호 감독은 선수들의 투지를 나무라는 팬 앞에 허리를 숙였다. 버스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서울 최용수 감독이나 김상호 감독 모두 체면을 구기긴 마찬가지다.



성남 일화는 강원 사태 하루 뒤, 구단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FA컵 포함 시즌 4연패하고 일부 팬이 SNS를 통해 항의하자 이 같은 조치를 내렸다. 성남은 “부진한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팬들의 염려와 걱정을 가슴 깊이 새기며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팬들은 27일 인천 원정경기가 열리기 전 성남 신태용 감독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팬들은 "지금까지의 성적을 가지고 신태용 감독님을 비난하거나 퇴진을 외칠 생각은 없다. 앞으로 신태용 감독님과 코칭스태프가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간담회를 요청한다"고 했다. 인천전 결과와 상관없이 신 감독도 팬 앞에 서야 할 처지다.

K리그 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팬과 지도자가 축구에 대해 공론을 벌인 경우가 있을까 싶다. 두 이해관계자 사이에 존재한 벽이 무너지는 듯하다. 지도자는 축구 관련 업종 종사자고, 팬들은 본연의 업무 외에 취미 생활로 구단 서포트를 하기 때문에 입장차가 분명하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독의 고유권한인 구단 운영권이 침범 당하면 혼란이 온다. 지도자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팀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오랜 축구계 생활의 노하우를 자신의 팀에 적용하고, 최신 축구 트렌드를 접목한다. 팬들의 주장에 흔들려 갈 길을 가지 못하면 팀은 우왕좌왕하고, 지도자 권위도 추락한다. 지도자가 흔들리면 선수·구단 모두 피해를 입고, 그 파장은 고스란히 팬에게도 전해진다.

분명 져서는 안 될 팀에 패하고, 선수들이 투지 없이 뛰며, 명문구단에 걸맞지 않게 연패해서 화나지 않을 서포터즈는 없다. 하지만 화풀이 대상이 팀의 감독과 선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세 팀을 도화선으로 더 많은 구단 팬들이 이같은 행동을 준비하려 한다면 한번 더 고민했으면 한다. 다른 팀에서 자신의 팀을 욕하면 얼굴을 붉히는 이들이 왜 화살을 자기 편 쪽으로 쏘려 하는가.

글=윤진만 기자
사진=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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