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기록의 사나이’ 김병지,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입력 : 2012.10.0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류청 기자=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故김구 선생이 좋아했다던 서산대사의 선시에 어울리는 한 선수가 있다. 기록의 사나이, 김병지(42, 경남)다.

데뷔 후 21시즌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김병지는 하나하나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꼬리표를 달았다. 최초, 최다라는 수식어를 단 것도 많다. 골키퍼 최초 득점, 최초 200경기 무실점 기록, 현역 최고령 출전 기록(진행중) 그리고 7일 FC서울과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 35라운드’에서 K리그 사상 최초로 6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우며 방점을 찍었다.

21년은 엄청난 무게다. 한 아이가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고, 남자 아이라면 군대까지 갈수 있는 시간이다. 김병지가 데뷔한 1992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올 해 21살이 됐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수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김병지는 변함없다. 축구에 대한 열정부터 몸무게까지 변한 게 없다. 머리가 조금 짧아졌을 뿐이다.

부침도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수많은 골을 얻어 맞으면서도 엄청난 선방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후배 이운재에게 자리를 넘겨줘야만 했다. 2008년 FC서울에서 오해 때문에 기회를 받지 못하고 경남FC로 이적했을 때는 ‘선수 생활이 끝난 것 아니냐?’는 물음표도 따라붙었었다. 김병지는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김병지는 “부모님이 좋은 몸을 물려주신 게 첫 번째 비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좋은 몸을 타고난 선수는 많다. 그는 끝없이 노력했다. 김병지는 “남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절제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술, 담배를 멀리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까지 경기력을 중심으로 생각했기에 전인미답의 기록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김병지의 의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유행을 선도하고, 제시하는 진정한 프로였다. 지난 1998년 울산 소속으로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헤딩골을 터뜨린 것은 한국축구사에 남을 장면이었다. 김병지도 그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칠라베르트를 비롯해 공격하는 골키퍼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김병지는 K리그에서 최초로 과감한 모습을 보여줬다.

골키퍼들에게는 올라야 할 큰 산이자 그들을 주는 큰 나무다. 울산 현대의 김영광은 “김병지 선배는 골키퍼의 위상을 높였다. 골키퍼는 가장 축구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김병지 선배는 공격수보다 빨랐고, 스타성도 있었다”라고 했고, 전북 현대의 최은성은 “병지형을 보면서 힘을 낸다”라고 말했다.

김병지는 대기록을 달성한 직후에도 또 다른 목표를 발표했다. 700경기 출전이다. “이제 100경기를 더 뛰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600경기보다 더 힘든 여정이 될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절제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2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노력하면 700경기가 가까이 올 것이다. 더 달리겠다.”

오르지 못할 성을 쌓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김병지는 후배들이 자신을 딛고 더 높이 오르길 바랐다.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도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스스로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경기장에서 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 책임감이 내게 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지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다. K리그 30년 역사에 김병지보다 더 큰 인기를 끈 선수도 있고, 더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도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게 있다. 김병지는 모든 K리거의 표상이다. 완벽한 프로의 교과서다. 그리고 그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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