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축구] 맨시티에는 ‘페이스 메이커’가 없다
입력 : 2012.04.0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마라톤은 42.195Km, 하지만 나의 결승점은 언제나 30Km까지다. 나는 누군가의 승리를 위해 달린다.” 지난 1월 개봉한 김명민 주연의 영화 페이스 메이커. 마라톤의 숨겨진 영웅을 다룬 영화다. 노장 마라토너 주만호(김명민 분)가 샛별 민윤기(최태준 분)의 금메달을 위한 카드로 묵묵히 런던 올림픽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올림픽 금메달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고정관념을 바꿨다. 보이지 않는 도움과 헌신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2011/2012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중후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를 선두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도 페이스 메이커 유무의 차이라고 본다. 축구에서 왠 페이스 메이커 타령이냐고? 엄연히 11명의 스포츠 축구에서도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이 요구된다. ‘소리 없는 영웅’ 박지성(31, 맨유)이 화려함을 감추고 경기 내내 투지를 불살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7, 레알 마드리드), 웨인 루니(27, 맨유)와 같은 슈퍼스타들을 빛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의도하지는 않아도 그 역할은 주만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선두 경쟁 얘기로 돌아와 맨유에는 페이스 메이커가 존재하는 반면 맨시티는 없다. 페이스 메이커가 의학 용어로 심장 박동 조율기(주: 주기적인 전기 자극으로 심장을 수축시킴으로써 심장의 박동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장치)를 뜻하는데, 맨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적재적소 선수를 자극하며 최고의 기량을 뽐내게 한다. 선수 대기실에서 선수 한 명을 선택해 독설을 퍼붓는 ‘헤어 드라이어’와 손자를 끌어안듯 할아버지의 인자함을 번갈아 보여준다. 선수들은 퍼거슨 감독을 무서워하면서도 존경한다.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승리하자”는 마음으로 다국적 선수들은 똘똘 뭉치고 이것은 꾸준한 상승세로 이어진다. 맨유는 퍼거슨 감독 덕에 1993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잉글랜드 최고의 구단으로 등극했다.

이에 반해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인터밀란에서 다수의 우승 트로피를 든 공로를 인정받아 맨시티에 입단했지만 그에겐 퍼거슨 감독 만한 카리스마가 없다. 경기장 위에서 종종 선보이는 이탈리아인 특유의 팔 동작을 카리스마와 연결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시즌 초반에는 세르히오 아구에로(23), 다비드 실바(26)와 같은 슈퍼 스타들 덕에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말썽꾸러기’ 마리오 발로텔리(22) 때문에 늘 골치 아프다. 전 주장 카를로스 테베스(28)와 에딘 제코(26)로부터는 하극상까지 당했다. 훈련장에서 맨시티 선수들끼리 주먹다툼을 했다는 뉴스 보도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문전에서 아구에로와 제코가 서로 공을 차겠다고 옥신각신 하는 장면은 맨시티의 현 문제점을 잘 드러낸다. 선수 관리가 순전히 감독의 몫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만치니 감독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도자가 흔들려도 경기장 안팎에서 중심을 잡아 줄 선수가 있다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맨유는 라이언 긱스(39), 폴 스콜스(38), 리오 퍼디낸드(34), 네마냐 비디치(31), 파트리스 에브라(31)와 같이 다년간 팀에서 활약한 베테랑이 여전히 뛰고 있다. 긱스와 스콜스는 전성기와 비교해 활동량, 체력이 떨어졌다지만 경기 전체 흐름을 읽고 균형을 잡는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을 하며 팀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기반이 탄탄하니 새로운 건물을 세워도 흔들림이 없다. 맨유는 정규리그에서 차곡차곡 승점을 쌓아 28라운드에서 선두를 빼앗았다. 31라운드 현재 승점 5점차로 벌렸다. 컵대회 탈락도 통산 스무 번째 리그 우승을 위한 사전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맨시티는 감독부터 선수까지 팀의 전통을 계승한 이를 찾기 힘들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대부분 갑부 구단주의 지갑 두께를 보고 팀에 합류했다. 1군 25명 중 가장 오랜 기간 맨시티에서 활약한 선수는 스무 세 살의 라이트백 마이카 리차즈다. 2005년부터 7년째 활약하고 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이적한 박지성과 같고, 긱스가 활약한 21년의 기간에 1/3에 불과하다. 긱스가 든든한 멘토로 활약하며 어린 선수에게 ‘맨유’라는 구단의 참 의미와 우승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역할을 리차즈에게서 기대할 수는 없다. 주장 뱅상 콩파니나 노장 임대생 다비드 피사로도 마찬가지다. 맨시티는 선수 개개인이 43.195Km 완주 하려고 하다 보니 초반 체력을 소진하고 가장 힘들다는 33~38km 지점에서 하나 둘씩 쓰러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12일 스완지시티 원정에서 0-1로 패하고 최근 두 경기에서 스토크시티(1-1), 선덜랜드(3-3)와 비기며 스스로 무너졌다. 반면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달린 맨유는 8경기 연속 무패(7승 1무)하며 우승을 위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5월 1일 맨유와의 결전에서 분위기를 뒤집지 못하면 늘 그렇듯 우승 트로피는 맨유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글=윤진만
사진=ⓒMatt west/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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