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추락-치료-기다림-환호로 이어지는 ‘인천 드라마’
입력 : 2012.08.2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전주] 류청 기자= 예상대로 가는 드라마는 재미없다. ‘설마?’ 하는 순간에 ‘정말?’이라는 이야기가 갑자기 나올 정도의 반전이 있어야 흥행할 수 있다. 최근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2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천 드라마’도 그렇다.

인천은 28라운드 경기까지 4연승을 달렸다. 12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던 팀이 8위까지 올라섰다. 사실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스플릿시스템에서 A그룹에 들어가지 못해도 박수를 받을 만 하다고. 29라운드 상대가 전북 현대였던 이유도 있다. 전북은 홈에서 웬만하면 승리를 놓치는 팀이 아니다. 인천은 승점 3점이 꼭 필요했고, 상대는 강했다. 그런데 주장 정인환은 “하필 전북을 만나 조금 아쉽지만, 우리는 이제 경기하는 방법을 안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인환의 말은 가볍게 날아가지 않고 묵직하게 나아갔다. 인천은 선제골을 터뜨렸고, 한 골을 내주고도 다시 경기를 뒤집었다. 내용도 좋았다. 김봉길 감독은 미드필드 지역에 5명의 선수를 배치하면서 허리싸움에서 전북을 이겨냈다. 전북은 공을 측면으로 뺄 수 밖에 없었다. 김 감독의 노림수에 걸린 것. 결국 인천은 전북을 끊임없이 괴롭힌 후에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인천은 승점 3점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사실 8강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정인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난 2월에 인천의 중국 광저우 전지훈련을 취재할 때는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에는 기대를 접었다. 너무 많이 내려갔었다. 선수들도 엄청난 부진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허정무 감독이 물러나면서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하는 듯 했다. 김봉길 감독도 지휘봉을 잡은 후 10경기 만에 첫 승을 거뒀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지만, 인천에게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선수들이 분열을 일으키지 않았다. 베테랑 선수들은 질책보다는 위로와 치료로 팀을 정비해 나갔다. 무작정 ‘햇볕정책’을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인천 선수들은 자신들의 플레이를 믿고 있었다. 설기현은 “실망하지 않았던 것은 경기력이 크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량 실점을 하거나 조직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흔들리지 말자고 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감독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선수들에 무리한 주문을 하기보다는 일종의 자정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선수들에게 최대한 자유를 부여하면서 상처가 아물길 바랐다. 선두들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감독은 “전반기에 부진에 빠졌을 때 선수들이 누구보다도 마음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 많이 위로해 주고, 선수들 입었던 상처를 치료해준 게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약이었다. 상승 조건을 갖춘 인천은 생각보다 빨리 살아났다. 25라운드에 전남 드래곤즈를 꺾을 때만해도 큰 기대를 불러오지는 못했지만, 인천의 연승 행진은 예상보다 길게 갔다. 울산 현대를 잡으면서 바람은 돌풍이 됐고, 전북까지 무너뜨리며 5연승을 달리면서 태풍이 됐다. 인천은 전반기와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강등을 걱정하던 팀이 극적으로 8강, A그룹 진입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인천의 8강 진입을 100%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천이 완벽하게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선수들은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정인환은 전북전이 끝나고 “이제 쉽게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라고 했다. 다른 팀 선수들도 인천을 인정하고 있다. 수원 삼성의 최재수는 “인천 선수들의 반응 속도 자체가 달라졌다”라고 했다. 기억해야 한다. 늦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천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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