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줄이고 누님 말 잘 들어''…제주 숨진 교사 마지막까지 학생 지도
입력 : 2025.05.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00아 너 누님한테 고마워 해야 한다. 학교 열심히 나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담배 못 끊겠으면 담배 줄였으면 좋겠다. 누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니까 누님 말만 잘 들으면 00이 잘 될거라 생각한다"



22일 제주 한 중학교 교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학생 측 민원인으로부터 힘들어했다는 내용의 메모가 남겨졌다. 해당 교사는 마지막까지 내색하지 않고 갈등을 빚던 학생을 지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낮 12시 찾은 제주시 한 장례식장에는 교사 A(40대)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황망한 현실 앞에 A씨의 옛 제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동료 교사들도 탄식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곳에서 유족 측과 A씨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무단 결석에 흡연…"학교는 나와야 한다"



A씨는 올해 3월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이 중 학생 B군이 '아프다'며 병원 진료 등을 이유로 학교를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진학과 학생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는 A씨로서는 묵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A교사는 '학교는 나와야 한다'고 수 차례 B군을 설득했다.



A씨는 B군의 무단결석을 '병가'로 처리하기 위해 B군에게 진료서 등 증빙서류를 가져올 것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냈다. 무단결석에 따른 제적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B군은 '깜빡했다' '내일 가져 오겠다'고 하며 미뤘고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급기야 B군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도 알았다. A교사 결석에 흡연까지 한 B군에게 생활지도를 했다.



◇밤낮 없이 울려댄 '누님'의 전화…다발성 민원도



3월초 A교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B군의 누나였다고 한다. B군의 누나는 '아이가 A교사 때문에 학교를 가기 싫어한다' 'B군에게 폭언을 했느냐' 는 취지로 항의했다. B군의 비행 책임을 A교사에게 돌렸다고 유족은 전했다.



A교사는 5월18일까지 줄곧 민원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전화는 더욱 빗발쳤다. 이달 하루에만 12통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의 휴대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가 넘어서까지 민원인과의 밤낮 없는 통화기록이 남아 있었다.



유족은 "카톡 내용을 어디를 봐도 강압적인 부분이 없었다. '아프다'고 하면 병원 갔다가 학교에 와라. '못 갈거 같아요' 하면 내일은 꼭 나오세요 등의 내용 뿐이었다. 민원인 측에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호소했다.



B군 측은 이밖에도 A교사를 상대로 제주도교육청, 제주시교육지원청 등에 잇따라 민원을 제기했다.



◇집·학교만 20년…모범 교사의 안타까움 죽음

A교사는 20년 가깝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과학 동아리를 운영하며 주말에도 방 안에서 수업 준비에 몰두했다고 한다. 유족은 장례시작에서 취재진에게 "자녀들에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는데 '아빠가 매일 일만해서 모르겠어요'라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A교사는 지난 22일 밤 0시46분께 중학교 인근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교무실에는 유서가 놓여져 있었다. 유서에는 B군으로부터 힘들어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A교사는 올해 2040청년 모범교사상 30명에 선정됐다. 투철한 사명감과 따뜻한 사랑으로 교육 활동에 헌신하며, 제주 교육 단체 발전에 기여한 교사들을 추천받아 수상한다.



유족은 이날 "A교사는 최근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진심으로 가르치고 지도한 것 밖에 없다. 혼자 속앓이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초등생 자녀를 두고 떠난 A교사의 마음을 헤아려 그의 명예가 제대로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동부경찰서는 A교사가 숨진 배경을 두고 협박 등이 있었는지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뉴시스 오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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