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돋보기] 세계축구 유행을 좇는 ‘얼리어답터’ 박경훈
입력 : 2012.06.1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윤진만 기자= 제주 유나이티드 박경훈 감독(51)은 신세대 지도자다.

쉰을 넘긴 나이에도 아들 뻘인 선수들과 최신 유행에 대해 얘기할 정도로 새로운 것들을 쉽게 흡수한다. 농담도 세련됐다. 성남 신태용 감독과 함께 K리그를 대표하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제주에는 아줌마 팬들이 줄을 선다. 7월 3일 K리그 올스타전 감독 후보로 2위를 달린다. 많은 축구팬들도 박경훈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감독으로서도 ‘오픈 마인드’로 얼리아덥터를 자처한다. 유로 2012에서 세계 최강 스페인이 조별리그 1차전 이탈리아전에서 선보인 제로톱 전술을 곧바로 K리그에 적용했다. 이전에도 성남 일화가 요반치치, 에벨톤의 부상 공백으로 불가피하게 9번 공격수 없이 경기했다. 플랜 B가 아니었다. 가용 가능한 에벨찡요, 한상운, 이현호 등 2선 공격수를 최전방에 배치했다. 효과는 크지 않았다. 17일 포항-서울전에서 제로톱을 선택한 포항도 마찬가지다.

제주는 컨디션 난조를 보인 호벨치의 공백도 이유였지만, 장신 공격수 서동현을 벤치에 두고 17일 수원 원정에서 단신 공격수들로 공격진을 꾸렸다. 박 감독은 경기 전 “상대는 우리가 어떻게 나올지 헷갈릴 것”이라며 들뜬 감정을 드러냈다. 유행 태블릿 PC을 구입하기 위해 줄 서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심경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유행 전술을 처음 사용하는 그는 어린애마냥 들떴다.

박경훈식 제로톱 전술은 5-3-2(또는 3-5-2)를 기본으로 스페인처럼 중원에 무게를 뒀다. 공격수 산토스와 자일은 중원과 전방을 오가며 움직였고 송진형, 정경호, 오승범, 허재원, 최원권 등도 각자의 장점을 앞세워 힘을 보탰다. 수원 포백 부근에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없는 적도 있다. 전반 39분 서동현 투입 전까지 제로톱 전술은 계속됐다.



결론적으로 39분간의 유행 전술은 실패였다. 전반 24분 코너킥 상황에서 실점했다. 자일의 골대 강타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공격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제로톱으로도 상대 수비진을 격파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제주는 후반 들어 중앙 미드필더 권순형을 투입하고 산토스, 자일, 송진형을 공격 2선에 배치한 4-2-3-1 전술로 바꾸고서 흐름을 바꿨다. 제주의 방울뱀 축구가 진가를 드러냈다. 수원이 쩔쩔 맸다.

박 감독은 애당초 전반을 무실점으로 끝내고 후반 전술 변화를 꾀하려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전술로 90분을 버티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플랜 B, C도 염두에 뒀다. 엔진 역할을 한 정경호가 전반 중반 다리 부상하면서 계획을 서둘러 변경해야 했을 뿐이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한 박 감독의 선택은 과감하고 파격적이었다. 스플릿 시스템 도입으로 16개 팀이 매경기를 결승전처럼 여기는 K리그에 실험 정신을 발휘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런 연구 활동이 계속된다면 K리그의 수준도 한 차원 높아질 것으로 본다. 개성이 담긴 축구도 좋지만,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직접 행하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

사진=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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